포롤로그

'우크라이나는, 타오른다!!
유로마이단 운동은 그야말로 거대한 폭풍을 동유럽에 몰고 왔습니다. 그저 야누코비치의 실정에 대한 불만, 우크라이나의 (몆몆의) 꿈 EU - 유럽화를 꿈꾸는 대다수의 시민들, 그리고 이어질때로 이어진 지독한 경제난, 그리고 동-서 갈등, 이 모든 원인들이 그 유로마이단의 궐기였고, 매우 폭력적인 방법이긴 했고, 당시 상황이 혼란스러워, 군경이 총을 먼저 쏘았는지등의 매우 의심스러운 사건이 있었지만, 하여튼 이 운동은 새로운 과도정부가 생기며 성공적으로 '혁명'으로 보여질수도 있었지만..

이후,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더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유럽으로 향하는 그 희망은 언제부터인가 소리 소문없이 커져버린 우크라 민족자결단(UNA-UNSO) 과 그의 동질적인 극우, 아니 극우라기도 뭐한 폭력집단의 영양분이 되어 키예프를 정확히 장악했고,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으로 볼떄, 푸른 하늘의 우크라이나는 붉게 타는 붉은 하늘로, 드넓은 천국의 황금 밭은 버려진 체르노젬이 되어버렸습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상황에 공포에 질렸거나, 관심이 없었으며, 이런 모습들은 중부-서부 우크라이나에 팽배해 있었고, 특히 이러한 극단적 민족주의 정당의 표밭이자 근거지인 서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아예 방관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고, 전혀 이들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며, 몆몆이 깨닫고 있겠지만, 이들은 결코, 우크라이나를 이끌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 상황을 보시다시피,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기반이 되어 현재, 연방화 운동에서 분리독립을 지나, '파시스트'를 때려잡고, 수백년간의 우크라이나라는 허울을 벗길 목표로 변한 동부를 '압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이들이 잘못되지 않고, 동부의 폭력 분리독립을 진압하는 모습인듯 싶지만..
- 제가 적었거나 여러 현지 자료등을 보면, 절대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상황이 의아해질수도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동부 우크라이나는 저들을 막아내고 있는것인가?' 라는 의문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건지 한번쯤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말이지요.
바로 현 상황의 '영웅', 그리고 난전을 겪고온 그야말로 연옥에서 돌아온 사나이, '이고르 이바노비치 스트렐코프' 말입니다.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이며, FSB에서의 대령이라는 정보만 대충 알려진 그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 '사수' 그는 누구인가?

'대령' - 스트렐코프
현재도 분분한 이름 (SBU 측은 성을 기르킨이라고 함) 을 가지고 있는 이고르 이바노비치 스트렐코프, 1970년 12월 17일 출생 (현 43살) 모스크바 출신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사람은 절대로 우크라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 동부 의 두 공화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NR)의 개국공신이기도 하며, 키예프 정부에겐 악몽과도 같은 존재가 유로마이단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는 실제로 유로마이단 활동시에 이름을 얻기 시작하며, SBU의 추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크림의 상황을 조정하고, 이후의 혼란에 빠진 동부에 안착해, 자신의 사병세력인 '스트렐코프 민병대'를 이끌고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도네츠크 슬라뱐스크 주변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짧은 세월이 지난 지금 꽤 나라의 모습이 잡혀진 도네츠크 공화국의 현 최고 사령관(5월 12일)에서부터, 현재, '국방부 장관' 직을 위임(5월 16일) 받은 상태이며, 그의 도시인 슬라뱐스크는 현 동부의 '스탈린그라드' (혹은 레닌그라드) 처럼 신성화 되어있습니다.
그의 정체는 매우 불분명한데, 우크라이나 보안국 SBU 측은 현직 GRU 요원이라고 하며, 러시아의 침략적 행위의 기수 역활을 맡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스트렐코프는 퇴역군인이자 FSB ATC(대테러센터 - FSB 휘하의 대테러부대 - 활동을 관리하는 하위기관 : 말 그대로 '알파' 그룹의 지휘부이기도 함)의 퇴직자이며 현재 역사에 관심이 깊은 시민이며 독실한 정교인이다 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 뭐 이미 출신부터 비범하긴 하지만 ㄱ-.. 하여튼 현직 군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정규군 이전부터, 민병대원의 역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룰 내용이긴 하지만, 그의 경력을 보면 매우 화려합니다. 곧 놀랄 준비를 하시길..
대령의 과거
스트렐코프는 1970년 소련 모스크바의 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조국전쟁 당시의 소련군 장교였으며, 훌륭하게 싸워온 할아버지의 말과 현직 소련군 장교인 자신의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역덕에 눈을 떴습니다..
자라나면서 역사를 좋아하는지라, 그는 1989년부터 적백전쟁당시의 '백군'의 연구에 관심있어했고, 그 모습을 재구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게 배우면서 애국심과 정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 1993년 모스크바 국립 역사적 고문 대학(역덕들의 장소)에서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전문적 역사가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그는 1993년에 군에 입대해 1년동안 신생 러시아 연방군, 골리치코에 위치한 제190 미사일 기지의 대공보병 호위 중대에서 복무했습니다.
... 라고 했지만, 그 이전, 졸업하기 1년전에부터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분쟁)에 러시아측 민병대(제2 체르노모례 카자크 부대)에서 지원자로 활동했으며, 이게 그의 첫 전쟁이였습니다. 거기에서는 그저 풋내기여서 6월에서 한다동안 러시아-트란스니스트리아 군 측의 편에서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1992년 11월부터 ~1993년 3월까지 '지옥' 보스니아에 젊은 나이의 스트렐코프는 러시아인 지원부대에 참가하게 됩니다.

'슬라브 형제를 지키기 위해!' - 보스니아
별의 별 쓰레기들이 서로 싸우는 난장판에서, 러시아인 지원부대는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받고 훌륭히 군 복무를 하였던 아나톨리 레베드 중령과 같은 훌륭한 케이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같이 개판 오분전의 상황이였습니다.
그런 곳에 지원하여 싸우던 스트렐코프는, 자신들과 같은 민병대들의 규율이 형편없고, 술을 마시는 음주자들은 심지어 '전우에게 총을 쏘는' 참상까지 목격하면서, 민간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민병대는 무기든 도적떼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후 스트렐코프는 러시아로 돌아와 보스니아 내전 종전 회고록 '보스니안 다이어리'를 '기르킨' 명의로 출판했습니다. - (http://www.golos-epohi.ru/?ELEMENT_ID=11978 일부분) - 겸사로, 스트렐코프는 이런 경험으로 애주가를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지니던 스트렐코프는 군의 경력을 1994년 악명높은 체첸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제166 근위 차량화 소총병 여단으로 옮겼으며, 3월부터 ~ 10월까지 체첸에서 전투를 경험했습니다. 1차 체첸전 기간동안 거기에서 군의 눈에 들었던건지는 불명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총정보국(GRU)의 특수부대 장교가 되어, 특수부대 임무를 맡게되면서, 복무가 확인된 년도는 1996~2005년, 즉 2차 체첸전 동안 캅카스 지역의 특수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1998년~1999년동안에는 1차 이후의 이슬람 반군의 팽창기 - 2차 체첸전 당시의 격전지였던 '다게스탄'에 복무했으며, 공교롭게도 샤밀 바샤예프의 와하브주의 이슬람 반군(쉽게 말해 그당시 체첸군 과격파)가 침입해서 세계각국의 무자헤딘과 물자가 모이던 시기, 그곳의 불신과 정보부족이 즐비한 곳에서 스트렐코프는 자신의 부대를 엄격한 규율등으로 그당시 전투지역인 부이얀스크(아파트 테러 + 카-봄의 대명사)에서도 전투를 하면서 이슬람 반군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1999년, 카라마히(부이얀스크 지역의 소도시 - 지역 반군이 점령하여 '와하브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함)에 강력하게 뿌리내린 샤밀의 게릴라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스트렐코프는 이들이 이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것을 보면서 적들에게 시간을 주는것이라고 경고했고, 스트렐코프는 정찰부대와 특수부대를 이용해 이슬람 반군이 있는 마을을 하나씩 섬멸 했습니다.
스트렐코프의 작전 방침 - '빠짐없이 천천히'에 입각하여, 정리하고 있을때, 체첸전의 영웅중 한명인 미하일 라부네츠 상장이 이곳으로 전임을 왔을때에도 상장급 인물이 왔는데도 인사도 안하는 간큰(?)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라부네츠 상장은 방송 인터뷰중에 반군들이 있는 벙커를 발견했다며 호들갑 떠는 순간이였는데, 스트렐코프는 그 뒤에 계속해서 진짜 반군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 이런것으로 스트렐코프는 자신을 숨기며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넉넉히 하되, 어느 작전이든 끝을 보아야 한다' - 스트렐코프의 철칙, 다게스탄의 GRU 대원들
반군 통제하의 지역 토벌 작전은 1999년 8월 29일 부터 9월 13일까지 이어졌으며, 이런 토벌로 탈환한 카라마히는 스트렐코프의 지휘가 빛을 발한 순간이며, 2차 체첸전의 러시아군 작전의 첫 단추였습니다. 스트렐코프는 이후 2차 체첸전의 많은 특수작전을 지휘하는 GRU 스페츠나츠의 훌륭한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게스탄에서 레베드 중령과 같이 활동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그 당시 레베드 중령은 민병대원, 스트렐코프는 GRU 지휘관이였다는것이 아이러니 -ㅅ-.
2차 체첸전 당시의 자료는 전무합니다. 하지만 GRU의 촉망받는 장교로써, 엄청난 작전등에 많이 투입되었으며, 여러 체첸 반군 대장을 사살하는 임무등을 맡았을것으로 추정됩니다. 2001년에는 VDV 스페츠나츠 연대인 제45 근위 독립 공수연대에서 복무하며, 러시아 인권단체에게서 '납치'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 가장 치열할 상황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건, 그만큼 중요 작전에 투입됬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공식적인 언급은 여기에서 끝나고, 후의 기록은 전무하지만, GRU에서 FSB ATC으로 복무를 대테러 임무등에 활동했지만, 이후 예비역으로 전역했습니다. - 언급에 따르면, 다시 다게스탄에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ATC 측은 거절했고, 자신은 그 말을 들은 직후 군 경력을 끝마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스크바나 여러 동네를 거치면서 역사가와 언론보도(ANNA 통신)등을 통해 느긋히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2014년 1월 말, - 자신의 역사적인 신념과 정교의 신앙에 따라 - 키예프의 그리스 사원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밝히고, 유로마이단의 키예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이후에 계속.
- 스트렐코프라는 인물은 정말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정말로 말이지요. 언젠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 어떻게 보면, 스트렐코프는 블라디미르 마카로프의 상위호환이군요. 역사가, 밀따꾸, 스페츠나츠 소속, 민병대장, 사상(러시아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ㅅ-), 카리스마, 재력(???), 신국가 구축(...)등..
출처 - http://ru.wikipedia.org/wiki/%D0%A1%D1%82%D1%80%D0%B5%D0%BB%D0%BA%D0%BE%D0%B2,_%D0%98%D0%B3%D0%BE%D1%80%D1%8C_%D0%98%D0%B2%D0%B0%D0%BD%D0%BE%D0%B2%D0%B8%D1%87#cite_note-.D0.A1.D0.B0.D0.B0.D0.BA.D0.BE.D0.B2-18
https://vk.com/strelkov_info?w=wall-57424472_2292 - 스트렐코프 전투 보고서 (노보로시야 사령부 토크!)

'우크라이나는, 타오른다!!
유로마이단 운동은 그야말로 거대한 폭풍을 동유럽에 몰고 왔습니다. 그저 야누코비치의 실정에 대한 불만, 우크라이나의 (몆몆의) 꿈 EU - 유럽화를 꿈꾸는 대다수의 시민들, 그리고 이어질때로 이어진 지독한 경제난, 그리고 동-서 갈등, 이 모든 원인들이 그 유로마이단의 궐기였고, 매우 폭력적인 방법이긴 했고, 당시 상황이 혼란스러워, 군경이 총을 먼저 쏘았는지등의 매우 의심스러운 사건이 있었지만, 하여튼 이 운동은 새로운 과도정부가 생기며 성공적으로 '혁명'으로 보여질수도 있었지만..

이후,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더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유럽으로 향하는 그 희망은 언제부터인가 소리 소문없이 커져버린 우크라 민족자결단(UNA-UNSO) 과 그의 동질적인 극우, 아니 극우라기도 뭐한 폭력집단의 영양분이 되어 키예프를 정확히 장악했고,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으로 볼떄, 푸른 하늘의 우크라이나는 붉게 타는 붉은 하늘로, 드넓은 천국의 황금 밭은 버려진 체르노젬이 되어버렸습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상황에 공포에 질렸거나, 관심이 없었으며, 이런 모습들은 중부-서부 우크라이나에 팽배해 있었고, 특히 이러한 극단적 민족주의 정당의 표밭이자 근거지인 서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아예 방관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고, 전혀 이들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며, 몆몆이 깨닫고 있겠지만, 이들은 결코, 우크라이나를 이끌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 상황을 보시다시피,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기반이 되어 현재, 연방화 운동에서 분리독립을 지나, '파시스트'를 때려잡고, 수백년간의 우크라이나라는 허울을 벗길 목표로 변한 동부를 '압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이들이 잘못되지 않고, 동부의 폭력 분리독립을 진압하는 모습인듯 싶지만..
- 제가 적었거나 여러 현지 자료등을 보면, 절대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상황이 의아해질수도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동부 우크라이나는 저들을 막아내고 있는것인가?' 라는 의문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건지 한번쯤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말이지요.
바로 현 상황의 '영웅', 그리고 난전을 겪고온 그야말로 연옥에서 돌아온 사나이, '이고르 이바노비치 스트렐코프' 말입니다.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이며, FSB에서의 대령이라는 정보만 대충 알려진 그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 '사수' 그는 누구인가?

'대령' - 스트렐코프
현재도 분분한 이름 (SBU 측은 성을 기르킨이라고 함) 을 가지고 있는 이고르 이바노비치 스트렐코프, 1970년 12월 17일 출생 (현 43살) 모스크바 출신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사람은 절대로 우크라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 동부 의 두 공화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NR)의 개국공신이기도 하며, 키예프 정부에겐 악몽과도 같은 존재가 유로마이단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는 실제로 유로마이단 활동시에 이름을 얻기 시작하며, SBU의 추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크림의 상황을 조정하고, 이후의 혼란에 빠진 동부에 안착해, 자신의 사병세력인 '스트렐코프 민병대'를 이끌고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도네츠크 슬라뱐스크 주변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짧은 세월이 지난 지금 꽤 나라의 모습이 잡혀진 도네츠크 공화국의 현 최고 사령관(5월 12일)에서부터, 현재, '국방부 장관' 직을 위임(5월 16일) 받은 상태이며, 그의 도시인 슬라뱐스크는 현 동부의 '스탈린그라드' (혹은 레닌그라드) 처럼 신성화 되어있습니다.
그의 정체는 매우 불분명한데, 우크라이나 보안국 SBU 측은 현직 GRU 요원이라고 하며, 러시아의 침략적 행위의 기수 역활을 맡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스트렐코프는 퇴역군인이자 FSB ATC(대테러센터 - FSB 휘하의 대테러부대 - 활동을 관리하는 하위기관 : 말 그대로 '알파' 그룹의 지휘부이기도 함)의 퇴직자이며 현재 역사에 관심이 깊은 시민이며 독실한 정교인이다 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 뭐 이미 출신부터 비범하긴 하지만 ㄱ-.. 하여튼 현직 군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정규군 이전부터, 민병대원의 역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룰 내용이긴 하지만, 그의 경력을 보면 매우 화려합니다. 곧 놀랄 준비를 하시길..
대령의 과거
스트렐코프는 1970년 소련 모스크바의 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조국전쟁 당시의 소련군 장교였으며, 훌륭하게 싸워온 할아버지의 말과 현직 소련군 장교인 자신의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역덕에 눈을 떴습니다..
자라나면서 역사를 좋아하는지라, 그는 1989년부터 적백전쟁당시의 '백군'의 연구에 관심있어했고, 그 모습을 재구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게 배우면서 애국심과 정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 1993년 모스크바 국립 역사적 고문 대학(역덕들의 장소)에서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전문적 역사가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그는 1993년에 군에 입대해 1년동안 신생 러시아 연방군, 골리치코에 위치한 제190 미사일 기지의 대공보병 호위 중대에서 복무했습니다.
... 라고 했지만, 그 이전, 졸업하기 1년전에부터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분쟁)에 러시아측 민병대(제2 체르노모례 카자크 부대)에서 지원자로 활동했으며, 이게 그의 첫 전쟁이였습니다. 거기에서는 그저 풋내기여서 6월에서 한다동안 러시아-트란스니스트리아 군 측의 편에서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1992년 11월부터 ~1993년 3월까지 '지옥' 보스니아에 젊은 나이의 스트렐코프는 러시아인 지원부대에 참가하게 됩니다.

'슬라브 형제를 지키기 위해!' - 보스니아
별의 별 쓰레기들이 서로 싸우는 난장판에서, 러시아인 지원부대는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받고 훌륭히 군 복무를 하였던 아나톨리 레베드 중령과 같은 훌륭한 케이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같이 개판 오분전의 상황이였습니다.
그런 곳에 지원하여 싸우던 스트렐코프는, 자신들과 같은 민병대들의 규율이 형편없고, 술을 마시는 음주자들은 심지어 '전우에게 총을 쏘는' 참상까지 목격하면서, 민간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민병대는 무기든 도적떼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후 스트렐코프는 러시아로 돌아와 보스니아 내전 종전 회고록 '보스니안 다이어리'를 '기르킨' 명의로 출판했습니다. - (http://www.golos-epohi.ru/?ELEMENT_ID=11978 일부분) - 겸사로, 스트렐코프는 이런 경험으로 애주가를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지니던 스트렐코프는 군의 경력을 1994년 악명높은 체첸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제166 근위 차량화 소총병 여단으로 옮겼으며, 3월부터 ~ 10월까지 체첸에서 전투를 경험했습니다. 1차 체첸전 기간동안 거기에서 군의 눈에 들었던건지는 불명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총정보국(GRU)의 특수부대 장교가 되어, 특수부대 임무를 맡게되면서, 복무가 확인된 년도는 1996~2005년, 즉 2차 체첸전 동안 캅카스 지역의 특수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1998년~1999년동안에는 1차 이후의 이슬람 반군의 팽창기 - 2차 체첸전 당시의 격전지였던 '다게스탄'에 복무했으며, 공교롭게도 샤밀 바샤예프의 와하브주의 이슬람 반군(쉽게 말해 그당시 체첸군 과격파)가 침입해서 세계각국의 무자헤딘과 물자가 모이던 시기, 그곳의 불신과 정보부족이 즐비한 곳에서 스트렐코프는 자신의 부대를 엄격한 규율등으로 그당시 전투지역인 부이얀스크(아파트 테러 + 카-봄의 대명사)에서도 전투를 하면서 이슬람 반군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1999년, 카라마히(부이얀스크 지역의 소도시 - 지역 반군이 점령하여 '와하브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함)에 강력하게 뿌리내린 샤밀의 게릴라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스트렐코프는 이들이 이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것을 보면서 적들에게 시간을 주는것이라고 경고했고, 스트렐코프는 정찰부대와 특수부대를 이용해 이슬람 반군이 있는 마을을 하나씩 섬멸 했습니다.
스트렐코프의 작전 방침 - '빠짐없이 천천히'에 입각하여, 정리하고 있을때, 체첸전의 영웅중 한명인 미하일 라부네츠 상장이 이곳으로 전임을 왔을때에도 상장급 인물이 왔는데도 인사도 안하는 간큰(?)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라부네츠 상장은 방송 인터뷰중에 반군들이 있는 벙커를 발견했다며 호들갑 떠는 순간이였는데, 스트렐코프는 그 뒤에 계속해서 진짜 반군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 이런것으로 스트렐코프는 자신을 숨기며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넉넉히 하되, 어느 작전이든 끝을 보아야 한다' - 스트렐코프의 철칙, 다게스탄의 GRU 대원들
반군 통제하의 지역 토벌 작전은 1999년 8월 29일 부터 9월 13일까지 이어졌으며, 이런 토벌로 탈환한 카라마히는 스트렐코프의 지휘가 빛을 발한 순간이며, 2차 체첸전의 러시아군 작전의 첫 단추였습니다. 스트렐코프는 이후 2차 체첸전의 많은 특수작전을 지휘하는 GRU 스페츠나츠의 훌륭한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게스탄에서 레베드 중령과 같이 활동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그 당시 레베드 중령은 민병대원, 스트렐코프는 GRU 지휘관이였다는것이 아이러니 -ㅅ-.
2차 체첸전 당시의 자료는 전무합니다. 하지만 GRU의 촉망받는 장교로써, 엄청난 작전등에 많이 투입되었으며, 여러 체첸 반군 대장을 사살하는 임무등을 맡았을것으로 추정됩니다. 2001년에는 VDV 스페츠나츠 연대인 제45 근위 독립 공수연대에서 복무하며, 러시아 인권단체에게서 '납치'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 가장 치열할 상황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건, 그만큼 중요 작전에 투입됬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공식적인 언급은 여기에서 끝나고, 후의 기록은 전무하지만, GRU에서 FSB ATC으로 복무를 대테러 임무등에 활동했지만, 이후 예비역으로 전역했습니다. - 언급에 따르면, 다시 다게스탄에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ATC 측은 거절했고, 자신은 그 말을 들은 직후 군 경력을 끝마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스크바나 여러 동네를 거치면서 역사가와 언론보도(ANNA 통신)등을 통해 느긋히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2014년 1월 말, - 자신의 역사적인 신념과 정교의 신앙에 따라 - 키예프의 그리스 사원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밝히고, 유로마이단의 키예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이후에 계속.
- 스트렐코프라는 인물은 정말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정말로 말이지요. 언젠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 어떻게 보면, 스트렐코프는 블라디미르 마카로프의 상위호환이군요. 역사가, 밀따꾸, 스페츠나츠 소속, 민병대장, 사상(러시아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ㅅ-), 카리스마, 재력(???), 신국가 구축(...)등..
출처 - http://ru.wikipedia.org/wiki/%D0%A1%D1%82%D1%80%D0%B5%D0%BB%D0%BA%D0%BE%D0%B2,_%D0%98%D0%B3%D0%BE%D1%80%D1%8C_%D0%98%D0%B2%D0%B0%D0%BD%D0%BE%D0%B2%D0%B8%D1%87#cite_note-.D0.A1.D0.B0.D0.B0.D0.BA.D0.BE.D0.B2-18
https://vk.com/strelkov_info?w=wall-57424472_2292 - 스트렐코프 전투 보고서 (노보로시야 사령부 토크!)
덧글
러시아 극우나 우익과 우크라이나 동부 민병의 결합이나..
전쟁을 통해서, 양쪽의 파시스트가 성장해나가는구만요.
진정한 의미의 도살자들은 프라비 섹토르, 스보보다 등이고, 마이단은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며, 스트렐코프와 그들의 세력은 지극히 친러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적 색깔마저 일당독재를 꿈꾸고 있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자! 라는 것은 안보입니다 ㄱ-
방금이라도 냉전때 튀어나온듯한 (ㄱ-)
그루지야 백정이니 뭐니 하며 스탈린의 출신을 욕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스탈린의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루지야보다는 북오세티야(이슬람교도였다가 동방정교회로 개종한 유일한 지역으로, 그만큼 무슬림들이 가장 증오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지역이기도 하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도 그렇고, 90년대 러시아 스킨헤드들이 즐겨부른 빅토르 초이도 그들에게 있어 전혀 거부감 없이 '러시안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완충지대니 독립국이니 뭐니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존속은 그 영토에 속한 그 주민들이 스스로 자치에 맡기는 것 말고 더 이상적인 대책은 요구되지도 않고, 주변국이 왈가왈부할 문제도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웃기게도, 그들은 진정한 극수가 아니지요 -ㅅ- 그냥 소련말 - 붕괴 이후가 낳은 불썽사나운 인생들일 뿐입니다.
- 배타적이진 않습니다. 그저 러시아에 대한 문화를 존중해준다면, 그들도 우리도 인정하는 투이지요. 뭐 그들에게 어그로를 끌고 싶다면, '이봐 너네나라 폴란드에게도 털렸다맼ㅋㅋ' 거리면 그때부턴 죽는거지만 ㅋㅅ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