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쓰는 중전차 개발사 기갑,땅개관련



'독일 동지가 나찌를 무찌르기 위해 우리와 같이 싸운다!' '왕!'

때는 바야흐로 대조국전쟁, 소련 친구들이 승기를 잡아가던 1944년, 그러나 중전차 설계자인 키로프의 코틴이 개발한 IS-2등이 다른건 다 좋아도 전차전에서는 자기네들 생각보다는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별의 별 이상한 더길의 전차를 보게 되자, 새로운 중전차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는데..




'우린 좀더 튼튼하고 경사진 친구를 만들어야 할것 같아!'



'고참이 말하건데, 네말이 맞아. 우리는 좀더 경사진 녀석이 필요해!'


소련 전차를 개발하던 기술자 중 코틴이나 그리고 전차 개발계의 대장님급 존재인 두호프를 필두로 설계국에서 개발을 시작해 1944년 말 한 녀석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은 실험 전차 '키로볘츠-1' 이였지요.



'소리쳐보마, 응애!'

보시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IS-3 의 전신입니다. 그러나 몆 부분에서 다른데, 가장 잘 보이는 전면 장갑부분은 IS-3 보다는 IS-2 의 형태에 가까운 형태로, 첫 실험전차에서는 IS-2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탑에서는 신형포탑을 채택하는 등의 시도가 보였지요.

우여곡절 뚝딱똑딱 만들다 보니 1945년부터 우리들이 생각하는 IS-3의 모습이 나오게 되었으며 'Object 703' 의 명칭이 붙었습니다.


여기서 질문 '... 잠깐, GRU 양반. 저 위에 '키로프녜츠', 즉슨 키로프 물건이라는 말인데, 왜 2xx 코드가 붙지 않는거요?'

가금씩 헷갈리는 이야기이지만, 이것을 짚고 넘어가야 분명히 중전차의 코드는 첼랴빈스크 설계국등의 70x 시리즈가 많은데 그 많은 키로프 설계국의 손이 갔는가? 에 대해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당시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레닌그라드에 위치한 키로프 공장은 이후 첼랴빈스크로 옮기게 되었고, 설계국들도 전부 그곳으로 옮겨가 첼랴빈스크에서 전차를 개발하던 설계국과 공장과 결합해서 연구했기 때문이지요. 가끔씩 언급되길, 이러한 전차연구생산체를 '땅크포롬' 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또한, 첼랴빈스크는 이러한 이유로 '땅코그라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그렇게 해서 1941~45년까지의 중전차들은 코틴이나 두호프같은 키로프 공장 설계팀이 만들었다 해도, 첼랴빈스크 마크가 붙게 되는거랍니다. 심지어, 1941~3년까지, 코틴은 첼랴빈스크 공장의 총 설계자로 활동했습니다. 잠시동안 합병되었다고 보시는 편이 편하지요.



'미래스럽지 않는가!'

그래서 IS-3의 개발목적과는 애석하게도, 독일은 항복하게 되고 결국 1945년 실험 배치분이 베를린에서 승리 행진을 하게 되었고, 어제의 전우던 연합군은 기묘하게 생긴 이 전차를 보고 '와, 저런거 만들면 우리 전차 우짜냐..' 하면서 저것에 대항할 중전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야이 천하의 개쌍놈아, 동생이 자리 뺏기가 맞는 말이냐! 내가 적자란 말이다!'

아, 이 친구를 잊고 있었군요. 1943년, L. 트로야노프 - 후에는 M.발쥐가 주도하에 SKB-2(첼랴빈스크 시절 키로프 설계팀)이 똑같은 목적으로 IS-3와 같이 개발이 진행되고 1944년 IS-3 보다 더 빠르게 6대의 시제품이 나온 IS-4 코드명 'Object 701' 도 있었습니다. 다만, IS-2를 기반으로 하려는 개념이 강하여, 안정성있지만, 새로운것을 추구하던 (혹은 정치력에 밀렸거나) 소련 군부에 의해 결국에는 IS-3을 선택함으로 미래가 암울하게 된 불쌍한 친구입니다.

물론 ChTZ가 전쟁이 끝나고 난뒤 모든 생산력을 민간품(원래는 트랙터공장 이였습니다.)을 생산하는데에 모든것을 바쳐, 생산력이 떨어진것도 있었지요. 심지어, 그 생산력이면 모를까 연구력마저 가져가버린건지, 보고된 IS-4의 크고 작은 결함들을 고쳐내어 생산해야하는것인데, 그냥 내어버리니(심지어 200대 생산이 목표였던 1947년에는 고작 52대만 내놓았습니다.), 부대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였고, 결국 1951년에야 IS-4M이 등장하지만 25대를 끝으로 생산을 마칩니다(...)

그렇다고 새로운것이 없었다는것은 아닌데, IS-4은 제작할 때 소련에서는 그당시 고급 기술이라고 볼수 있는 용접 기술을 이용해서 기존의 IS에 비교하면 더욱 강력한 방호력을 가질수 있었지만, 설계면에서 IS-3에 비교하자면 그렇게 혁신적이라고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고장도 심각했습지요 ㄱ-..

결국 생산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동생인 IS-3 보다 먼저 나왔는데, IS-4로 채택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

소련 전차개발사를 잘 읽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ㅅ-..

하여튼간 1945년 이후의 중전차 개발사는 조금더 다양각색해지나..



'미사일이 약이야! 미사일로 만든 병기를 가져와!'

이 분의 등장으로 중전차 설계국은 위기를 맞는데..!


- 계속?

덧글

  • 존다리안 2015/03/01 22:33 # 답글

    정작 IS-3도 그닥 전과는 좋지가 않았다는군요. 생각 외로 방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중전차가 도태된 것은 시대의 대세였을지도 모르죠. 어차피 미국이나 영국도 M-103이나 콩쿼러 같은 거 만들었다
    운용상의 난점 때문에 결국 도태시키지 않았습니까?
  • GRU 2015/03/01 22:45 #

    3차 중동전쟁이 전차전에서 겨우 붙어본 케이스인데, 이것도 이집트 군 친구들이 졸전을 벌여서 (심지어 손실수의 반이 버리고 간 수.) 일어난 문제이기도 합니다 -ㅅ-.

    뭐 중전차의 도태는 시대의 대세이나, 거기에 정치적 문제도 작용했다는 것이 소련 전차개발사의 의의라고 볼수 있지요. 이 친구들은 그외의 전차도 시도했지만. 정치적 입지가 약한 슬픈 친구들이였걸랑요.
  • 건물 2015/03/15 08:44 #

    중동전 당시 이집트 애들이 잘못 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은 IS격파에 애를 먹었습니다. 방호력은 등장시기를 고려해보면 엄청나게 강력했죠.
  • shaind 2015/03/15 07:47 # 답글

    저 옥수수 동무의 삽질이 결국 사상 최초의 활강포 전차가 소련에서 제식채용되는 결과로...
  • GRU 2015/03/15 23:17 #

    소동지 뒷걸음치다 쥐동무 잡은격 -ㅅ-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