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판즈쉬르의 기억 그외 잡설



1982년 5월 16-30일까지의 전술 상황




1982년 판즈쉬르 구역에서의 졸전으로 카불로 이어지는 구간의 보급선이 위험해 지려고 하자, GRU 측은 아나톨리 트카체프 중령을 보내, 그에게 마수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정보 수집과 작전 수행을 위해 판즈쉬르 계곡으로 들어왔지만, 지역 주민들과 상황을 파악하고, 제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GRU 측에 보내고


1983년, 독자적으로 행동, 아프간측 도움자의 협력을 받아 마수드와 대화를 나누었고 긴 대화 끝에 "러시아인들은 포격을 하지 않고, 그대신, 우리들은 당신들을 공격하지 않겠다" 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1983년에 마수드 측과 협정을 맺었습니다. 마수드는 이런 녀석이 들어와서 진심으로 대화하는 트카체프가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농담도 하고, 서로 식사도 같이 하면서 있었다고 합니다. 트카체프는 말하길 "역시, 이 사람이 판즈쉬르의 사자인줄 알겠군."이라고 생각했다고.


이 협정은 1년 동안의 잠시동안의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가장 긴 기간이라고 볼수 있었습니다.


나지불라(그당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가 1984년 "나 저 꼴슬람 새끼 잡고 싶어여!!!! 공산당 정치국님 씨빨 허락 내려주요1$@!#%#$@^" 해서 상층부에 거의 병신새끼들 뿐이였던 소련은 1984년, 다시 공세에 나섭니다. 그러나, 판즈쉬르는 원래 목표인 장악은 물론이고, 제한적인 점거에만 그쳤고, "약속"을 저버린 케이스가 되어버려, 원래 GRU가 생각했던 마수드가 지배하는 판즈쉬르의 "회유"는 물로 가버렸지요.






1989년 "타이푼" 작전 시행 당시의 TOS-1, 배치 시험 케이스가 초토화 작전이였다.



세바르나제(그당시 외교부 장관 겸, 후에 그루지야 대통령)가 전한 아프간 전역에서의 마지막 작전이자. 철수 퇴로에 위치한 판즈쉬르 살랑그 지역 주변의 전 마을을 쓸어버리는 초토화 작전이였습니다. 공산당 정치국이 작전을 지시했는데, 이유는 40군의 카불 찰수 시, 뒷통수를 때리는 "공격"에 나설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40군의 지휘관은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이 작전은 전술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고, 아프가니스탄 인들의 지지 철회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써도 하면 안될 행위였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세바르나제의 태도는 완강했습니다.


하지만, 나지불라는 소련군이 곧 다시 돌아와 여기에 남아있길 바랬으며, 현재 군벌들과 터질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권기반을 뒤흔들 세력들을 뿌리뽑는 취지의 작전을 지지했으며, 결과는.. 소련군과 아프간군에 의해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사살됬으며,  표현에 따르면 "소련병사들은 후퇴하면서 말없이  아이들의 눈 덮힌 시체들을 지나쳤다."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 당시 마수드는 후퇴하는 러시아군에 대해서 공격하지 말라고 했지만, 서로 완전히 빗나간 케이스였지요.



결국 서로 악연으로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관계라고 할까요.

덧글

  • 설봉 2016/01/29 00:39 # 답글

    그러고 보니 마수드 사후 타직 군벌들은 근황이 어떤가 모르겠군요. 마수드가 그나마 북부동맹 지도자들 중에 온건한 인물이었던 건 아프간 타직의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을 것 같은데, 요즘에는 또 어떨지.
  • GRU 2016/01/31 15:56 #

    모두다 개판인거 보면, 으으.. 아프간은 다시 딸레반들의 소굴이..
  • ㅇㅇㅇ 2016/01/29 04:26 # 삭제 답글

    그리고 나지불라 박사는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에게 거세를 당하게 되는데...
  • GRU 2016/01/31 15:56 #

    물리적 거세 + 이승하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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