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oenoboz.ru/index.php?catid=62:-015&id=482:---3&Itemid=37&option=com_content&view=article
솔저 오브 포춘의 러시아 판이라고 볼수 도 있는 "솔닷 우다치"의 회고로, 2011년 10월 5일 세르게이 베레진이 투고한 글입니다.
이 글은 한 분의 요청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방산시장 찾아 삼대양을 건넌 여행기
대량의 전투 차량을 판매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양한 경쟁품이 있는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을 광고하고,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많은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팜플랫에 적혀있는 것 뒤의 것(운용시 나올수 있는 단점 - 주)들을 숨길줄 아는 정신적이고, 실질적인 전문가의 비용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간단한 예시로, 현재의 시선으로 BMP-3은 세계 시장에서 훌륭한 차량이며, 다양한 국가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중에서 특히 UAE(아랍에미레이트)가 처음으로 운용해보고, 다종 경쟁에서 승리해 첫 판매가 되었던 예를 들어 보도록 한다.
---
1991년 5월, 소련군사 대표단은 BMP-3에 관심이 많은 UAE에 방문했다. 한가지 명심해야 할점은 UAE 군대는 세계에서 현대적인 장비를 많이 운용하는 국가중 하나로 아랍 군사 전문가들은 장비를 구입하기 전 많은 것을 따져 본다. 일단 이러한 시장(아랍)에서 운용될수 있는지 엄격한 프로그램 제한을 둔 기본적 시험을 해본다, BMP을 구입할때도, 이러한 규칙은 예외가 아니었다. 다양한 방안들을 운용하느라, 1년 이상이 걸렸다. 먼저 소련의 BMP-2, 영국의 워리어, M2 브래들리를 시험 운용해보고, 마지막으로 - BMP-3가 있었다.
대표단이 귀국하고, 이러한 전투차량의 테스트 준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책임감과 빠듯한 데드라인,(대표단은 6월 말에 돌아왔고, UAE에 시험용 차량은 7월 중에 보내야 했다. 즉, 1달 반도 남지 않았다.)이 있었다. 고민 이후, 그들은 4대의 시험차량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 투르크메니스탄 에서 시험중인 BMP-3, (투르크메니스탄은 소련군이 자주 군용차량의 사막지형에 대한 운용 테스트 데이터를 얻기 위해 자주 실험장으로 사용되었다. - 역주)
적절한 온도 상황에서 미리 점검하기 위해서 - 첫번째 테스트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기동과 사격이였다. 그늘에서도 50도의 고열, 그리고 계속되는 물(냉각) 문제가 있다. 많은 이들은 비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UAE로써는 생각치도 않았던 문제였을 것이다. (돈 신경 안쓴다는 말 - 주), 우리는 일반적 군 운용 테스트보다, 더욱 어렵게 내었다. 원래 30mm 기관포의 1500m의 사거리를 TTT(요구성능 - 주)를 올렸고. 우리는 2500~3000m의 거리에서 사격을 했다. 또한 100mm 포를 테스트하며, 우리는 기본 타겟과 비식별표적(언덕 뒤에 있는 것들)에 대한 HE-FRAG 사격을 수행했고, 몆몆 결점을 발견할수 있었다. 또한 유도미사일들을 테스트하며, 많은 확률로 불량품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동 테스트에서는 현가장비에서 문제점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시험은 쿠르간(쿠르간 시, 러시아의 도시로 BMP-3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음 - 주)에서도 이어졌으며, 이곳에서의 시험은 투르크멘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었다. 유도미사일들은 좋은 명중률을 나타내었고, 이동중 포탑을 돌리고 유도미사일 사격도 첫번째로 성공했다. 이는 이후 UAE의 판촉에 매우 유리하게 사용 되엇다.
이 두 시험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졌지만, 충분한 기간이였고, 데이터를 기반한 문제점에 대해 재작업을 하기에는 1달도 걸리지 않았다.
아부다비의 첫 느낌은 - 더위와 숨이 막히는(더위로) 느낌이였다. 우리는 UAE의 대사와 군 관계자를 만났다. 그 후 장비를 체킹하며, 구매 관심자들에게 장비에 대해 익숙하도록 전투력과 같은 특징을 설명했다. 아랍 관계자들은 설계적 개념,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강한 관심을 보였다. 충분한 디테일과 무기 성능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BMP-3의 설계는 외국만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매우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졌기 떄문이다. 이런 점으로 볼때, 새로운 무기체계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했다.
(BMP-3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UAE군 기갑 사령관인 아르야니 장군이 가지고 있었고 과 다른 군사전문가들도 관심을 숨기려 하지 않고 있었다. 정보를 위해 셰이크-자예드(아부다비에 있는 유명 모스크 - 주 )으로 가던 고위급 대표단들 - UAE 군관계자 말고도 - 사우디 측도 참가했으며, 차량의 기본 시험은 일주일을 수행했다.
이제 차량 시험의 시간이 오기 전. 여단은 우리가 기동과 사격 시험을 보여줄 훈련장을 제공해줬다. 아부다비에 남아 우리들은 아마 남은 시각 - 1주일이였고, 그 동안 우리는 탄약등을 쟁여놓은걸 풀고, 운반하려고 했다. 한번 잘 해보려고 결심한 것이다. 우리를 도와주려고 아랍측은 현지 군인들(약 12명되는)을 보내주었다. 쟁여놓은걸 풀고, 유도탄, 일반탄을 나누고 탄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측은 탄약상자를 병사들과 옮겼다. 깜짝 놀랬던것은 병사들은 우리 개발자들이 옮기는줄 알았다고 말했을때였다.
작업이 끝났을때, 우리는 몆일 동안을 도시를 다녀보기로 했다. 하지만 기동시험은 1주일이 주어진게 아닌, 3일이 주어졌다는걸 알고,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방산박람회 오프닝 행사
원래대로라면 실제 테스트보다 2일동안의 체크가 가능했을 것인데, 현재 새로 주어진 상황은 바로 오늘에만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상부에게 아침 일찍 훈련장으로 준비하기 위해 향하자고 했으나 먹히질 않았다. 우리는 오전이든 오후든 떠나지 못했고, 다음날 아침에는 아예 우리가 타고 다니던 도요타가 망가져버렸다. 우리는 결국 13시(오후 1시)에 도착해버렸다. 가장 좋은 테스트 기간이 아니라, 가장 더운 시간에 해야만 하는 것이다. 휴식이 있어야만 했다.
준비는 긴장속에서 이뤄졌다. 3기의 차량을 (1기는 기동이 불능이였다.) 체크하고 있었고 특히 화포와 FCS 부분, 장전부분, 관측창 조율 등등.. 우리 윗대가리들은 당연히 편하게 "어서 기동해라" 라고 하지만, 나는 굳건하게 "확인하기 전엔, 절대 사격 못한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3기의 확인이 끝나자, 3기가 동시에 사격에 나섰다. 처음엔 30MM, 다음엔 100MM. 이 모습에서 나온 효과는 꽤 중요했다.
그다음 모두가 잠시 퇴장하자, 우리는 탄을 넣기 시작했다. 이미 어두워져서, 2기의 불을 켰다. (장비확인 및 수리를 위한) 밤 10시가 되자, 우리는 사격 작업을 진행했다.
사격 시험에는 여단에서 파견된 운용병이 주어졌다. - 포수 예피파노프, 부르나쉐프, 체카닌, 운전병 로바노프, 보론코프, 차장 콘드라쇼프, 살리니코프, 표도로프, - 시험 책임자 베레진, 또한 전문가 리조르킨, 덴자노프, 그리고 자이첸코가 있었다.
탄을 다 넣고, 리조르킨과 우리는 FCS를 조정하고 휴식을 취했다. 새벽 2시 까지는 허락되었다. UAE 측에게는 강력한 반대파인 무토우 중령이 있었다. 아주 유능하고 정력적인 전문가였다. 아랍측은 무기의 가장 기본적인 병기의 가능성인 - 최대 사거리, 정확도,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테스트에 묻기 시작했다.
숙소에 돌아가자, 아마 말해줘야 할건, 숙소(병영)에는 20명이 있었고, 갈대로 덮힌 위에는 큰 선풍기가 있었다. 나는 잠을 잘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긴장이 되어서.. 그러자 바로 아침이 찾아왔고, 8시가 되어 테스트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7시에 모두 모였다. 평가하기 위해서 참가한 전문가들은 아르야니 장군, 무토우 중령, 그리고 무바라크 소령이였다.
우리는 2기의 기종으로 테스트를 하고, 1기는 예비용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는 나중에 매우 쓸모있게 쓰이게 된다. 첫번째 차량의 승무원들은 차장 살리니코프, 포수 예피파노프, 운전병 로바노프, 두번째 차량의 승무원들은 차장 콘드라쇼프, 포수 부르나쉐프, 운전병 보론코프였다.
첫번째 목표는 - 800m, 2500m, 4500m에서의 고정표적 유도미사일 고정사격(제자리 쏘기), 4000m 거리와 50m 너비의 사격판에서 100mm 고정사격, 30mm 기관포로, 2000m 고정표적 사격이였다.
그래서 8시 방향에서 두 차량은 동시에 미사일을 표적에 발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통제실에 있었고, 아르야니 장군은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다(12X 배율 확대가 가능했다.) 미사일은 표적에 명중했다. 광경은 정말 멋졌다. 승무원들은 3발을 쏘았고, 장군은 이를 보고 엄지를 올리고 말했다. "사루흐, 오꼐이!" (멋진 미사일이군.)
수백미터 거리의 사격이 끝나고, 다음도, 그리고 3번째 사격이 왔다. 모든 사격이 끝나고, 우리는 검증에 나섰다. 모든 미사일이 표적에 명중해 있었다. 4000m 거리에서는 재미있는 경우로 명중했다. 두 미사일이 같은 자리에 명중 한 것이다. 이것은 두번 때린 것이라고 콘드라쇼프가 열정적이게 말했다. 포신 안정기는 4 (10에서)가 아닌 8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경험많은 무토우는 조용히 언급하길. "나도 다 봤소." 라고 언급했다.
100mm HE-FRAG 사격은 꽤 힘들었다. 우리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얻어낸 탄의 수정 궤적을 체크를 할 수 가 없었다. (아랍측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테스트는 긍정적으로 끝났다. 4000M 거리의 50M의 원에 50%로 명중했다. 기관포도 2000m의 목표를 명중했다.
그러자 두번째 목표를 주었다 - 2600m 목표에 30mm 고정사격, 100mm 포로 2500m 거리에 있는 17m 너비의 원에 사격, 유도미사일의 3000m 에 있는 이동목표 타격, "자유사냥" - 다양한 소형 타겟을 30mm로 사격하는 것. 이는 얼마나 많은 타겟을 처리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였다.
30MM와 100MM 사격을 끝내고, 유도미사일 사격에 나섰다.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국내(소련)의 훈련장에서는 표적이 조금더 작은 각을 가지고 동그랗게 움직였다. (소련측은 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회전각을 많이 안내기 위함임 - 주) 여기에서는 타원으로 도는 표적을 맞혀야 했다. 이 포탑은 0~160/170도로 돌수 있지만, 그를 넘어가면 사격을 못한다. 차량은 빙 하고 돌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고 있엇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우리 승무원들이 이동표적에 대한 포탑 회전 사격 테스트를 겪어서라는 점이였다.
사격은 시작되었지만, 여기서 약간의 불편함이 등장했다. 첫번째 사격은 명중이였지만, 두번째 사격은 탄이 터져버렸으며 (불량이였다.) 세번째는 미사일은 성장적으로 날아갔으나, 갑작이 휙 하고 떨어져 버렸다. (이는 전자장비의 연결이 끊어져 안정기를 해체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판명났다.) 그때, 아 생각좀 해봐야 했다..
그때야 우리의 사랑스런 예비용 차량이 있었다. 바로 그 차량에 타서 사격은 다시 진행되었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두 테스트가 더 있었지만, 모두 순조롭게 끝났다. 나는 그때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러시아 측 박람회에서 국방장관 파벨 그라체프가 설명하고 있다.
위의 사격이 끝나고, 우리는 검증에 나섰다. 모든 유도탄은 표적에 명중했고, 2600m의 표적에 적중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랬던 것은 2500M 100MM 사격이였다. UAE 의 목표는 그저 차량의 정확성만 검증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17m 원에는 땅에 맞았던 흔적과 정중앙에, 깃발이 있던 곳에 있던 깃발에 맞았던 것이다. 거기로 가보자, 깃발은 파편에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그러자 나는 무토우에게 물었다. "자, 어떻소?" 그러자 무토우는 말했다. "뭐.. 2000m 아닙니까?" 나는 "2000m라뇨. 2500m 입니다." 라고 말하자.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안드레이 코코쉰 제1 국방차관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며 축하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다시 100MM에 대한 질문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100mm 주포는 BMP(IFV)에게는 매우 비정상적인 선택이였고, UAE 관계자들에게 이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하기에 매우 힘든 것이였다.
"자유 사냥"에서는 예피파노프가 훌륭한 성과를 내었다. 18기의 목표중 15기를 명중한 것이다.
세번째 목표는 - 1000m 이동목표를 유도탄으로 고정사격, 800m 소형 목표물(디젤 드럼통) 에 대한 고정사격, 2500m 거리의 목표물을 100mm 이동사격하는 것이였다.

러시아측 부스에 출품된 장비들
나는 꼭 말하고 싶은게, 아랍 친구들은 이동표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것 같다. 그들은 그걸 열심히 만든것 같은데, 그냥 나무판떼기가 아니라, 합판 비슷한 것으로 만들었던 싶다. 하여튼간 그것이 다시 나오자, 유심히 살펴보면서 예피파노프는 쏘지 않았다. 장군은 이를 보며 "왜 쏘지 않는 거지?" 라고 말하던 순간, 표적이 사라져버렸다. 탄이 발사되고, 없어진 것이다. (알아 보니, 탄을 이번엔 아예 전투탄을 사용했다. 훈련용 탄이 아니라!)
장군은 펄쩍 뛰며, 나에게 달려와서는 "이보시오, 유도탄이 아니라 고폭을 썼잖소!" 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잘 보십쇼!" 나는 대답했다. 그는 지프에 타다 다시 돌아와선 이렇게 말했다. "거참 나쁜 미사일이구만, 우리 표적들이 다 부숴졌잖소.."
이제 유도탄으로 마지막 남은 테스트가 남았다. 소형 표적에 대한 사격, 유도탄으로는 꽤 힘든 도전이였다. 800m의 거리라면, 조준경을 조금만 위로 올려도, 빗나가고, 밑으로 조금만 내려도 땅에 내려 박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근거리 사격(800m)은 포수가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게냐(애칭)은 두 미사일을 주었다. 만약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사격에 나섰고, 우리는 큰 기쁨에 소리 칠 것이였다 (맞길 희망했다.)
시간은 무겁게 흐르고, 탄은 배럴을 향해 명중했다. 아주 빠르게. 나는 "자. 이제 더 쏠까요?" 라고 말하자. 그들은 "됬소!" 라고 말해왔다. 그러는 중 두번째 차량은 2500M 이동사격을 하고 있었고, 이는 고정사격과 다를바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우리의 무기체계에 대한 강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였다. 그 후 UAE 전문가는 "왜 당신이 100MM 무기가 필요한지 우린 이제 알았소!" 라고 말해주었다.
모든 사격이 끝나고, 나는 연회에 초대되었다. 거기에서 아르야니 장군이 개발자인 당신이 평가를 어찌 내리는가를 물어보았고, 나는 유도탄은 - 훌륭했고, 무유도탄(HE-FRAG)와 30MM는 좋은 결과를 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평가에 동의했다. 우리의 모든 수행원들은 전부 만족해 했지만, 기동시험에서의 선택은 어찌 나올련지는 불투명 했다. 차량들엔 결점이 있고, 하나는 심각했다.
기동 테스트에 대한 몆 언급이 있고 난뒤, N.A 주라브레예프 소장이 말하길 그들이 자신들의 전군 전술 훈련과 함께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띰 했다. 1시간 30분 뒤 UAE 측은 4기의 BMP를 컨테이너에 싣고 끝없는 모래들의 언덕으로 향했다. 아부다비와 50km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이 테스트를 관여하는 여단장은 말하길 "나는 여기서 도요타 험지구동차를 타고 갈것" 이라고 언급했다. 만약 끝까지 따라오는 성능을 내면, 우리는 만족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했다.
60도의 온도였다. 모래바람은 불기 시작하고, 모래는 얼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험지는 30도(각)부터, 등성이를 오를땐 80도(각)로 까지 올라가는 듯했다. 그래서 엔진은 벌써부터 한계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어쩔때는 모래에 궤도가 파묻히기도 했지만, 걸리지는 않았다. 어쩔떄는 돈좌된 도요타를 3대의 BMP가 끌어내기도 했다. 클러치를 "클나게" 밟았다.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계속 들었다. 이거 사람도 물론이고, 장비들도 못버티는거 아닌가? 말이다. 7시간 후, 3기의 BMP와 차가 돌아왔을땐, 이건 거의 기적과도 같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가장 기뻤던 것은 BMP-3 가 그걸 처음 통과했다는 것이다. 우린, 모든 경쟁차량, 심지어 브래들리도 이곳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여단장은 우리에게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오꼐이." 그리고 그는 "이제 전진." 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차량이 낼수 있는 가장 최고속도로 200km를 계속 달리는 것을 진행했다. 앉아있던 장교들은 전부 이 설계의 약점을 볼려고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기동은 3일동안 이어졌다. 모든 FM에 반한다 하더라도, 최고속도로 순항은 16-17시간동안 이어지고, 5-7시간동안 점검을 시작하고 또 나아갔다. 다리에는 멍이 들고, 열에 사람들은 지쳐있었고, 밤에만 짧게 쉴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위원회에서는 탑승부의 온도를 낮추고, 에어컨 시스템의 개선, 소음수준을 개선해야 된다고 언급되었지만, 최종적으로기동 부분(소금과 모래로 이뤄진 사막에서의 속도, 기동성 - 신뢰성) 에 있어서는 NATO 비교 병기들보다 더 우수하다고 평가 내려졌다.

현재 BMP-3은 다양한 시장에서 준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모래언덕을 넘나드는 중에 두번이나 궤도가 끊어진적이 있었지만, 부속 도구도움 없이 다시 기동할수 있었다. 가장큰 요인은 운전병의 특수한 상황에서의 미숙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2043km를 순항하고 있을 때, 유압 현가장비가 망가졌고, 뒤집어져, 옆으로 전복했다.
나는 그 사실을 말해줄수 있다. 사실 그 운전수는 무토우 중령이였다. 차장과 쿠르간에서 온 전문가가 타고 있었는데, 차량이 전복되었을 때, 3명 전부 부상당했다. 우리 측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무토우 중령은 머리가 깨졌다. (뼈는 문제 없었다.) 우리 측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해치를 열고, 어찌저찌 튀어나왔다.
이제 다시 무기 테스트로 가보자, 우리는 시연이 끝나고, 연회장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온통 구운 양고기 요리에 포위되었다. 돼지고기는 없었다. 손으로 오직 먹어야만 했다. 우리는 별미라고 주는 양 눈알 요리에 대해서 거부했으나, 그들은 우리를 이해 해주었다.
식사 이후, 우리는 다시 진지하게 일에 임했다. UAE 전문가들의 동의로 오후에 우리는 UAE 군을 지도해 주어야 했다. 그것을 수행원에게 보고하자, 그들은 "뭐, 걔내들 일이지. 걔내들 잘쏘겠지 뭐." 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두번째 시험도 우리에게는 첫번째와 같은 중요성을 가진다고 여겼다. 아랍친구들의 (직접 몰아보고 내는) 긍정적인 평가는 결정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 이후 우리는 이러한 인원을 뽑기 위해 훈련장에 나섰고, 우리는 툴라출신 - 베레진,콘드라쇼프,살리니코프,쿨리츠키,예피파노프, 쿠르간 출신 - 부르나셰프, 체카닌, 로바노프, 보론코프, 표도로프, 모스크바 출신 - 리조르킨, 64176 부대 출신 - 자이첸코 UAE 출신 아르야니 장군, 무토우 중령, 무바라크 소령 또한, 사우디 출신 장교도 참가했다.
이 전부는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이였다. 모두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 툴라출신의 전문가가 만장일치로 찬성한다 해도, 쿠르간과 모스크바 쪽에서 뭐라 할것이고, 엉망진창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해도 결정권은 사령부가 가지고 있었다. 리스크가 있어도, 못 먹어도, 고였다.
20M 간격으로 떨어진 두 차량에서 사격을 했다. 해치가 열리고, 전투 부분에 포수 자리에는 UAE 병사가, 차장 자리에는 통역자가 있었다. 포탑 위에는 예피파노프가, 다른 차량에는 부르나셰프가 앉아 설명해 주었다.
어찌 쏘는지, 우리는 유도 미사일을 어찌 쏘는지 부터 시작했다. - 아르야니, 무토우, 무바라크, 사우디 대령.. 4기의 표적은 제대로 맞았다. 하지만 아르야니가 쏜 한 발은 빗나갔는데, 모래바람이 가렸기 때문이였다. 그 다음 30m - 100m로 옮겨갔다.
30mm 소구경 포를 운용할때는 대부분 혼자서 했다. 여기서 무토우 중령은 탄창을 아무런 조정없이 갈겨대었다. 우리에겐 그 목표물은 어찌 되었을지는 분명하게 보였다. 그는 또한 장전체계와 100MM의 분산도를 확인했고, 그는 이후 100mm와 유도탄을 이동중에 사격하는 것을 결정했다. 여기서 또다른 논쟁이 있었는데, 훈련이 있어야 해낼수 있다는 것이였다. 여기서 예피파노프에게 중령은 "내가 맨날 연습하면 자네 보다 더 잘 쏠껄세." 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때에도, 그들은 차량에 모였다. 무토우 중령은 포수, 콘드라쇼프는 차장, 탑승부에는 부르나셰프와 통역이 있었다. 운전미숙으로 부상을 입었다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때 중령은 머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그의 역활을 충분히 수행했다.
좋은 결과와 아랍친구들의 빠른 습득 능력은 두가지로 설명할수 있었다. 하나는 규칙적인 훈련 (심지어, 최고장성이 훈련을 받고 있으니, 일반 장병들의 기분은 어련하겠다.) 두번째로, BMP-3 무기 체계의 이용이 매우 간단하다는 점, (포수가 할일은 표적 선택, 탄약 종류 선택, 거리재기, 사격이였다.)
테스트는 끝났다. UAE측은 매우 흡족해 했고, 우리에게 축하를 전했다. 무바라크 소령은 "제가 보고서를 쓰겠습니다. 물론 그들이 도입 할진 모르지만, 제가 도입 권고를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부다비에는 약간 늦게 도착했다. 콘드라쇼프와 예피파노프는 수리부로 돌아갔고, 우리는 호텔에 있었다. 나는 테스트가 완료 되기전 모두를 모아 약간의 작은 만찬을 준비했다. 약간의 피클과 소고기조림(тушенки 라고 부름 - 주), 보드카 "골든링", 약간의 러시아식 애피타이저를 준비하고, "만세!" 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멋지게 해내어 주었다.. 우리는 역경을 해내었고, 그리고 멋지게 해내주었다는 것에...
- 후략 (다음 글은 BMP-3에 대한 약간의 스토리를 가르쳐주지만, 직접적인 이글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어 생략합니다.)-
UAE 군이 귀엽군요 ㅋㅋㅋㅋ 무슨 걸판에서 튀어나오는 캐릭터들도 아니고, 어디 하나같이 개그 하나는 치네요 ㅋㅋㅋ 무토우 중령 초카와이.
하여튼간 90년대의 소련-러시아의 혼란기에서도,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에 러시아 국방산업에 대가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멋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일을 덤덤히 이렇게 이야기 해주는 것도 참 재미있게 번역했습니다 -ㅂ-.
다시 한번 추천해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ㅎㅅㅎ..
솔저 오브 포춘의 러시아 판이라고 볼수 도 있는 "솔닷 우다치"의 회고로, 2011년 10월 5일 세르게이 베레진이 투고한 글입니다.
이 글은 한 분의 요청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방산시장 찾아 삼대양을 건넌 여행기
대량의 전투 차량을 판매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양한 경쟁품이 있는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을 광고하고,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많은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팜플랫에 적혀있는 것 뒤의 것(운용시 나올수 있는 단점 - 주)들을 숨길줄 아는 정신적이고, 실질적인 전문가의 비용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간단한 예시로, 현재의 시선으로 BMP-3은 세계 시장에서 훌륭한 차량이며, 다양한 국가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중에서 특히 UAE(아랍에미레이트)가 처음으로 운용해보고, 다종 경쟁에서 승리해 첫 판매가 되었던 예를 들어 보도록 한다.
---
1991년 5월, 소련군사 대표단은 BMP-3에 관심이 많은 UAE에 방문했다. 한가지 명심해야 할점은 UAE 군대는 세계에서 현대적인 장비를 많이 운용하는 국가중 하나로 아랍 군사 전문가들은 장비를 구입하기 전 많은 것을 따져 본다. 일단 이러한 시장(아랍)에서 운용될수 있는지 엄격한 프로그램 제한을 둔 기본적 시험을 해본다, BMP을 구입할때도, 이러한 규칙은 예외가 아니었다. 다양한 방안들을 운용하느라, 1년 이상이 걸렸다. 먼저 소련의 BMP-2, 영국의 워리어, M2 브래들리를 시험 운용해보고, 마지막으로 - BMP-3가 있었다.
대표단이 귀국하고, 이러한 전투차량의 테스트 준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책임감과 빠듯한 데드라인,(대표단은 6월 말에 돌아왔고, UAE에 시험용 차량은 7월 중에 보내야 했다. 즉, 1달 반도 남지 않았다.)이 있었다. 고민 이후, 그들은 4대의 시험차량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 투르크메니스탄 에서 시험중인 BMP-3, (투르크메니스탄은 소련군이 자주 군용차량의 사막지형에 대한 운용 테스트 데이터를 얻기 위해 자주 실험장으로 사용되었다. - 역주)
적절한 온도 상황에서 미리 점검하기 위해서 - 첫번째 테스트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기동과 사격이였다. 그늘에서도 50도의 고열, 그리고 계속되는 물(냉각) 문제가 있다. 많은 이들은 비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UAE로써는 생각치도 않았던 문제였을 것이다. (돈 신경 안쓴다는 말 - 주), 우리는 일반적 군 운용 테스트보다, 더욱 어렵게 내었다. 원래 30mm 기관포의 1500m의 사거리를 TTT(요구성능 - 주)를 올렸고. 우리는 2500~3000m의 거리에서 사격을 했다. 또한 100mm 포를 테스트하며, 우리는 기본 타겟과 비식별표적(언덕 뒤에 있는 것들)에 대한 HE-FRAG 사격을 수행했고, 몆몆 결점을 발견할수 있었다. 또한 유도미사일들을 테스트하며, 많은 확률로 불량품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동 테스트에서는 현가장비에서 문제점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시험은 쿠르간(쿠르간 시, 러시아의 도시로 BMP-3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음 - 주)에서도 이어졌으며, 이곳에서의 시험은 투르크멘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었다. 유도미사일들은 좋은 명중률을 나타내었고, 이동중 포탑을 돌리고 유도미사일 사격도 첫번째로 성공했다. 이는 이후 UAE의 판촉에 매우 유리하게 사용 되엇다.
이 두 시험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졌지만, 충분한 기간이였고, 데이터를 기반한 문제점에 대해 재작업을 하기에는 1달도 걸리지 않았다.
아부다비의 첫 느낌은 - 더위와 숨이 막히는(더위로) 느낌이였다. 우리는 UAE의 대사와 군 관계자를 만났다. 그 후 장비를 체킹하며, 구매 관심자들에게 장비에 대해 익숙하도록 전투력과 같은 특징을 설명했다. 아랍 관계자들은 설계적 개념,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강한 관심을 보였다. 충분한 디테일과 무기 성능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BMP-3의 설계는 외국만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매우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졌기 떄문이다. 이런 점으로 볼때, 새로운 무기체계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했다.
(BMP-3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UAE군 기갑 사령관인 아르야니 장군이 가지고 있었고 과 다른 군사전문가들도 관심을 숨기려 하지 않고 있었다. 정보를 위해 셰이크-자예드(아부다비에 있는 유명 모스크 - 주 )으로 가던 고위급 대표단들 - UAE 군관계자 말고도 - 사우디 측도 참가했으며, 차량의 기본 시험은 일주일을 수행했다.
이제 차량 시험의 시간이 오기 전. 여단은 우리가 기동과 사격 시험을 보여줄 훈련장을 제공해줬다. 아부다비에 남아 우리들은 아마 남은 시각 - 1주일이였고, 그 동안 우리는 탄약등을 쟁여놓은걸 풀고, 운반하려고 했다. 한번 잘 해보려고 결심한 것이다. 우리를 도와주려고 아랍측은 현지 군인들(약 12명되는)을 보내주었다. 쟁여놓은걸 풀고, 유도탄, 일반탄을 나누고 탄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측은 탄약상자를 병사들과 옮겼다. 깜짝 놀랬던것은 병사들은 우리 개발자들이 옮기는줄 알았다고 말했을때였다.
작업이 끝났을때, 우리는 몆일 동안을 도시를 다녀보기로 했다. 하지만 기동시험은 1주일이 주어진게 아닌, 3일이 주어졌다는걸 알고,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방산박람회 오프닝 행사
원래대로라면 실제 테스트보다 2일동안의 체크가 가능했을 것인데, 현재 새로 주어진 상황은 바로 오늘에만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상부에게 아침 일찍 훈련장으로 준비하기 위해 향하자고 했으나 먹히질 않았다. 우리는 오전이든 오후든 떠나지 못했고, 다음날 아침에는 아예 우리가 타고 다니던 도요타가 망가져버렸다. 우리는 결국 13시(오후 1시)에 도착해버렸다. 가장 좋은 테스트 기간이 아니라, 가장 더운 시간에 해야만 하는 것이다. 휴식이 있어야만 했다.
준비는 긴장속에서 이뤄졌다. 3기의 차량을 (1기는 기동이 불능이였다.) 체크하고 있었고 특히 화포와 FCS 부분, 장전부분, 관측창 조율 등등.. 우리 윗대가리들은 당연히 편하게 "어서 기동해라" 라고 하지만, 나는 굳건하게 "확인하기 전엔, 절대 사격 못한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3기의 확인이 끝나자, 3기가 동시에 사격에 나섰다. 처음엔 30MM, 다음엔 100MM. 이 모습에서 나온 효과는 꽤 중요했다.
그다음 모두가 잠시 퇴장하자, 우리는 탄을 넣기 시작했다. 이미 어두워져서, 2기의 불을 켰다. (장비확인 및 수리를 위한) 밤 10시가 되자, 우리는 사격 작업을 진행했다.
사격 시험에는 여단에서 파견된 운용병이 주어졌다. - 포수 예피파노프, 부르나쉐프, 체카닌, 운전병 로바노프, 보론코프, 차장 콘드라쇼프, 살리니코프, 표도로프, - 시험 책임자 베레진, 또한 전문가 리조르킨, 덴자노프, 그리고 자이첸코가 있었다.
탄을 다 넣고, 리조르킨과 우리는 FCS를 조정하고 휴식을 취했다. 새벽 2시 까지는 허락되었다. UAE 측에게는 강력한 반대파인 무토우 중령이 있었다. 아주 유능하고 정력적인 전문가였다. 아랍측은 무기의 가장 기본적인 병기의 가능성인 - 최대 사거리, 정확도,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테스트에 묻기 시작했다.
숙소에 돌아가자, 아마 말해줘야 할건, 숙소(병영)에는 20명이 있었고, 갈대로 덮힌 위에는 큰 선풍기가 있었다. 나는 잠을 잘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긴장이 되어서.. 그러자 바로 아침이 찾아왔고, 8시가 되어 테스트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7시에 모두 모였다. 평가하기 위해서 참가한 전문가들은 아르야니 장군, 무토우 중령, 그리고 무바라크 소령이였다.
우리는 2기의 기종으로 테스트를 하고, 1기는 예비용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는 나중에 매우 쓸모있게 쓰이게 된다. 첫번째 차량의 승무원들은 차장 살리니코프, 포수 예피파노프, 운전병 로바노프, 두번째 차량의 승무원들은 차장 콘드라쇼프, 포수 부르나쉐프, 운전병 보론코프였다.
첫번째 목표는 - 800m, 2500m, 4500m에서의 고정표적 유도미사일 고정사격(제자리 쏘기), 4000m 거리와 50m 너비의 사격판에서 100mm 고정사격, 30mm 기관포로, 2000m 고정표적 사격이였다.
그래서 8시 방향에서 두 차량은 동시에 미사일을 표적에 발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통제실에 있었고, 아르야니 장군은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다(12X 배율 확대가 가능했다.) 미사일은 표적에 명중했다. 광경은 정말 멋졌다. 승무원들은 3발을 쏘았고, 장군은 이를 보고 엄지를 올리고 말했다. "사루흐, 오꼐이!" (멋진 미사일이군.)
수백미터 거리의 사격이 끝나고, 다음도, 그리고 3번째 사격이 왔다. 모든 사격이 끝나고, 우리는 검증에 나섰다. 모든 미사일이 표적에 명중해 있었다. 4000m 거리에서는 재미있는 경우로 명중했다. 두 미사일이 같은 자리에 명중 한 것이다. 이것은 두번 때린 것이라고 콘드라쇼프가 열정적이게 말했다. 포신 안정기는 4 (10에서)가 아닌 8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경험많은 무토우는 조용히 언급하길. "나도 다 봤소." 라고 언급했다.
100mm HE-FRAG 사격은 꽤 힘들었다. 우리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얻어낸 탄의 수정 궤적을 체크를 할 수 가 없었다. (아랍측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테스트는 긍정적으로 끝났다. 4000M 거리의 50M의 원에 50%로 명중했다. 기관포도 2000m의 목표를 명중했다.
그러자 두번째 목표를 주었다 - 2600m 목표에 30mm 고정사격, 100mm 포로 2500m 거리에 있는 17m 너비의 원에 사격, 유도미사일의 3000m 에 있는 이동목표 타격, "자유사냥" - 다양한 소형 타겟을 30mm로 사격하는 것. 이는 얼마나 많은 타겟을 처리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였다.
30MM와 100MM 사격을 끝내고, 유도미사일 사격에 나섰다.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국내(소련)의 훈련장에서는 표적이 조금더 작은 각을 가지고 동그랗게 움직였다. (소련측은 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회전각을 많이 안내기 위함임 - 주) 여기에서는 타원으로 도는 표적을 맞혀야 했다. 이 포탑은 0~160/170도로 돌수 있지만, 그를 넘어가면 사격을 못한다. 차량은 빙 하고 돌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고 있엇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우리 승무원들이 이동표적에 대한 포탑 회전 사격 테스트를 겪어서라는 점이였다.
사격은 시작되었지만, 여기서 약간의 불편함이 등장했다. 첫번째 사격은 명중이였지만, 두번째 사격은 탄이 터져버렸으며 (불량이였다.) 세번째는 미사일은 성장적으로 날아갔으나, 갑작이 휙 하고 떨어져 버렸다. (이는 전자장비의 연결이 끊어져 안정기를 해체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판명났다.) 그때, 아 생각좀 해봐야 했다..
그때야 우리의 사랑스런 예비용 차량이 있었다. 바로 그 차량에 타서 사격은 다시 진행되었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두 테스트가 더 있었지만, 모두 순조롭게 끝났다. 나는 그때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러시아 측 박람회에서 국방장관 파벨 그라체프가 설명하고 있다.
위의 사격이 끝나고, 우리는 검증에 나섰다. 모든 유도탄은 표적에 명중했고, 2600m의 표적에 적중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랬던 것은 2500M 100MM 사격이였다. UAE 의 목표는 그저 차량의 정확성만 검증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17m 원에는 땅에 맞았던 흔적과 정중앙에, 깃발이 있던 곳에 있던 깃발에 맞았던 것이다. 거기로 가보자, 깃발은 파편에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그러자 나는 무토우에게 물었다. "자, 어떻소?" 그러자 무토우는 말했다. "뭐.. 2000m 아닙니까?" 나는 "2000m라뇨. 2500m 입니다." 라고 말하자.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안드레이 코코쉰 제1 국방차관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며 축하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다시 100MM에 대한 질문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100mm 주포는 BMP(IFV)에게는 매우 비정상적인 선택이였고, UAE 관계자들에게 이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하기에 매우 힘든 것이였다.
"자유 사냥"에서는 예피파노프가 훌륭한 성과를 내었다. 18기의 목표중 15기를 명중한 것이다.
세번째 목표는 - 1000m 이동목표를 유도탄으로 고정사격, 800m 소형 목표물(디젤 드럼통) 에 대한 고정사격, 2500m 거리의 목표물을 100mm 이동사격하는 것이였다.

러시아측 부스에 출품된 장비들
나는 꼭 말하고 싶은게, 아랍 친구들은 이동표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것 같다. 그들은 그걸 열심히 만든것 같은데, 그냥 나무판떼기가 아니라, 합판 비슷한 것으로 만들었던 싶다. 하여튼간 그것이 다시 나오자, 유심히 살펴보면서 예피파노프는 쏘지 않았다. 장군은 이를 보며 "왜 쏘지 않는 거지?" 라고 말하던 순간, 표적이 사라져버렸다. 탄이 발사되고, 없어진 것이다. (알아 보니, 탄을 이번엔 아예 전투탄을 사용했다. 훈련용 탄이 아니라!)
장군은 펄쩍 뛰며, 나에게 달려와서는 "이보시오, 유도탄이 아니라 고폭을 썼잖소!" 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잘 보십쇼!" 나는 대답했다. 그는 지프에 타다 다시 돌아와선 이렇게 말했다. "거참 나쁜 미사일이구만, 우리 표적들이 다 부숴졌잖소.."
이제 유도탄으로 마지막 남은 테스트가 남았다. 소형 표적에 대한 사격, 유도탄으로는 꽤 힘든 도전이였다. 800m의 거리라면, 조준경을 조금만 위로 올려도, 빗나가고, 밑으로 조금만 내려도 땅에 내려 박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근거리 사격(800m)은 포수가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게냐(애칭)은 두 미사일을 주었다. 만약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사격에 나섰고, 우리는 큰 기쁨에 소리 칠 것이였다 (맞길 희망했다.)
시간은 무겁게 흐르고, 탄은 배럴을 향해 명중했다. 아주 빠르게. 나는 "자. 이제 더 쏠까요?" 라고 말하자. 그들은 "됬소!" 라고 말해왔다. 그러는 중 두번째 차량은 2500M 이동사격을 하고 있었고, 이는 고정사격과 다를바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우리의 무기체계에 대한 강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였다. 그 후 UAE 전문가는 "왜 당신이 100MM 무기가 필요한지 우린 이제 알았소!" 라고 말해주었다.
모든 사격이 끝나고, 나는 연회에 초대되었다. 거기에서 아르야니 장군이 개발자인 당신이 평가를 어찌 내리는가를 물어보았고, 나는 유도탄은 - 훌륭했고, 무유도탄(HE-FRAG)와 30MM는 좋은 결과를 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평가에 동의했다. 우리의 모든 수행원들은 전부 만족해 했지만, 기동시험에서의 선택은 어찌 나올련지는 불투명 했다. 차량들엔 결점이 있고, 하나는 심각했다.
기동 테스트에 대한 몆 언급이 있고 난뒤, N.A 주라브레예프 소장이 말하길 그들이 자신들의 전군 전술 훈련과 함께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띰 했다. 1시간 30분 뒤 UAE 측은 4기의 BMP를 컨테이너에 싣고 끝없는 모래들의 언덕으로 향했다. 아부다비와 50km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이 테스트를 관여하는 여단장은 말하길 "나는 여기서 도요타 험지구동차를 타고 갈것" 이라고 언급했다. 만약 끝까지 따라오는 성능을 내면, 우리는 만족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했다.
60도의 온도였다. 모래바람은 불기 시작하고, 모래는 얼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험지는 30도(각)부터, 등성이를 오를땐 80도(각)로 까지 올라가는 듯했다. 그래서 엔진은 벌써부터 한계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어쩔때는 모래에 궤도가 파묻히기도 했지만, 걸리지는 않았다. 어쩔떄는 돈좌된 도요타를 3대의 BMP가 끌어내기도 했다. 클러치를 "클나게" 밟았다.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계속 들었다. 이거 사람도 물론이고, 장비들도 못버티는거 아닌가? 말이다. 7시간 후, 3기의 BMP와 차가 돌아왔을땐, 이건 거의 기적과도 같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가장 기뻤던 것은 BMP-3 가 그걸 처음 통과했다는 것이다. 우린, 모든 경쟁차량, 심지어 브래들리도 이곳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여단장은 우리에게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오꼐이." 그리고 그는 "이제 전진." 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차량이 낼수 있는 가장 최고속도로 200km를 계속 달리는 것을 진행했다. 앉아있던 장교들은 전부 이 설계의 약점을 볼려고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기동은 3일동안 이어졌다. 모든 FM에 반한다 하더라도, 최고속도로 순항은 16-17시간동안 이어지고, 5-7시간동안 점검을 시작하고 또 나아갔다. 다리에는 멍이 들고, 열에 사람들은 지쳐있었고, 밤에만 짧게 쉴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위원회에서는 탑승부의 온도를 낮추고, 에어컨 시스템의 개선, 소음수준을 개선해야 된다고 언급되었지만, 최종적으로기동 부분(소금과 모래로 이뤄진 사막에서의 속도, 기동성 - 신뢰성) 에 있어서는 NATO 비교 병기들보다 더 우수하다고 평가 내려졌다.

현재 BMP-3은 다양한 시장에서 준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모래언덕을 넘나드는 중에 두번이나 궤도가 끊어진적이 있었지만, 부속 도구도움 없이 다시 기동할수 있었다. 가장큰 요인은 운전병의 특수한 상황에서의 미숙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2043km를 순항하고 있을 때, 유압 현가장비가 망가졌고, 뒤집어져, 옆으로 전복했다.
나는 그 사실을 말해줄수 있다. 사실 그 운전수는 무토우 중령이였다. 차장과 쿠르간에서 온 전문가가 타고 있었는데, 차량이 전복되었을 때, 3명 전부 부상당했다. 우리 측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무토우 중령은 머리가 깨졌다. (뼈는 문제 없었다.) 우리 측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해치를 열고, 어찌저찌 튀어나왔다.
이제 다시 무기 테스트로 가보자, 우리는 시연이 끝나고, 연회장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온통 구운 양고기 요리에 포위되었다. 돼지고기는 없었다. 손으로 오직 먹어야만 했다. 우리는 별미라고 주는 양 눈알 요리에 대해서 거부했으나, 그들은 우리를 이해 해주었다.
식사 이후, 우리는 다시 진지하게 일에 임했다. UAE 전문가들의 동의로 오후에 우리는 UAE 군을 지도해 주어야 했다. 그것을 수행원에게 보고하자, 그들은 "뭐, 걔내들 일이지. 걔내들 잘쏘겠지 뭐." 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두번째 시험도 우리에게는 첫번째와 같은 중요성을 가진다고 여겼다. 아랍친구들의 (직접 몰아보고 내는) 긍정적인 평가는 결정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 이후 우리는 이러한 인원을 뽑기 위해 훈련장에 나섰고, 우리는 툴라출신 - 베레진,콘드라쇼프,살리니코프,쿨리츠키,예피파노프, 쿠르간 출신 - 부르나셰프, 체카닌, 로바노프, 보론코프, 표도로프, 모스크바 출신 - 리조르킨, 64176 부대 출신 - 자이첸코 UAE 출신 아르야니 장군, 무토우 중령, 무바라크 소령 또한, 사우디 출신 장교도 참가했다.
이 전부는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이였다. 모두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 툴라출신의 전문가가 만장일치로 찬성한다 해도, 쿠르간과 모스크바 쪽에서 뭐라 할것이고, 엉망진창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해도 결정권은 사령부가 가지고 있었다. 리스크가 있어도, 못 먹어도, 고였다.
20M 간격으로 떨어진 두 차량에서 사격을 했다. 해치가 열리고, 전투 부분에 포수 자리에는 UAE 병사가, 차장 자리에는 통역자가 있었다. 포탑 위에는 예피파노프가, 다른 차량에는 부르나셰프가 앉아 설명해 주었다.
어찌 쏘는지, 우리는 유도 미사일을 어찌 쏘는지 부터 시작했다. - 아르야니, 무토우, 무바라크, 사우디 대령.. 4기의 표적은 제대로 맞았다. 하지만 아르야니가 쏜 한 발은 빗나갔는데, 모래바람이 가렸기 때문이였다. 그 다음 30m - 100m로 옮겨갔다.
30mm 소구경 포를 운용할때는 대부분 혼자서 했다. 여기서 무토우 중령은 탄창을 아무런 조정없이 갈겨대었다. 우리에겐 그 목표물은 어찌 되었을지는 분명하게 보였다. 그는 또한 장전체계와 100MM의 분산도를 확인했고, 그는 이후 100mm와 유도탄을 이동중에 사격하는 것을 결정했다. 여기서 또다른 논쟁이 있었는데, 훈련이 있어야 해낼수 있다는 것이였다. 여기서 예피파노프에게 중령은 "내가 맨날 연습하면 자네 보다 더 잘 쏠껄세." 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때에도, 그들은 차량에 모였다. 무토우 중령은 포수, 콘드라쇼프는 차장, 탑승부에는 부르나셰프와 통역이 있었다. 운전미숙으로 부상을 입었다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때 중령은 머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그의 역활을 충분히 수행했다.
좋은 결과와 아랍친구들의 빠른 습득 능력은 두가지로 설명할수 있었다. 하나는 규칙적인 훈련 (심지어, 최고장성이 훈련을 받고 있으니, 일반 장병들의 기분은 어련하겠다.) 두번째로, BMP-3 무기 체계의 이용이 매우 간단하다는 점, (포수가 할일은 표적 선택, 탄약 종류 선택, 거리재기, 사격이였다.)
테스트는 끝났다. UAE측은 매우 흡족해 했고, 우리에게 축하를 전했다. 무바라크 소령은 "제가 보고서를 쓰겠습니다. 물론 그들이 도입 할진 모르지만, 제가 도입 권고를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부다비에는 약간 늦게 도착했다. 콘드라쇼프와 예피파노프는 수리부로 돌아갔고, 우리는 호텔에 있었다. 나는 테스트가 완료 되기전 모두를 모아 약간의 작은 만찬을 준비했다. 약간의 피클과 소고기조림(тушенки 라고 부름 - 주), 보드카 "골든링", 약간의 러시아식 애피타이저를 준비하고, "만세!" 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멋지게 해내어 주었다.. 우리는 역경을 해내었고, 그리고 멋지게 해내주었다는 것에...
- 후략 (다음 글은 BMP-3에 대한 약간의 스토리를 가르쳐주지만, 직접적인 이글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어 생략합니다.)-
UAE 군이 귀엽군요 ㅋㅋㅋㅋ 무슨 걸판에서 튀어나오는 캐릭터들도 아니고, 어디 하나같이 개그 하나는 치네요 ㅋㅋㅋ 무토우 중령 초카와이.
하여튼간 90년대의 소련-러시아의 혼란기에서도,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에 러시아 국방산업에 대가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멋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일을 덤덤히 이렇게 이야기 해주는 것도 참 재미있게 번역했습니다 -ㅂ-.
다시 한번 추천해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ㅎㅅㅎ..
덧글
그래도 엔진룸 바로 위에 승무원실에 램프 도어가 내리기 까다롭게 되어 있던 건 심했어요. ㅜㅜ
(국내에서도 겨울에는 괜찮지만 여름에는 쪄죽는다고....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