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설은 첫 파병군 총사령관이였던 드보르니코프 상장(현 남부군관구 총사령관)이 VPK 지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초반 내용은 간단한 현 전장은 걸프전과 유고슬라비아 등등으로 바뀌었으며, 우리도 전쟁을 '일반화'해서 안되며 다양한 전장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뭐 그런 내용입니다.
특작경험
시리아 내에서의 병력 조직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는 '특수작전'식으로 구성되었다. 이에, 기존의 전략, 작전, 전술목표의 경계는 말소되었고, 전략/작전적 목표가 전술적 편제병력에 의해서 달성할수 있게 된 것이다.
특정한 환경에서의 전투상황 예시는 - 사막, 산악, 거주지역(가끔씩 도하상황도 일어난다.) 땅굴전, 정찰타격복합시스템 하 공군의 장거리 정밀타격이며, 또한 많은 부분에서 야간작전이 실시 되었다.
특수작전은 이하와 같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수행할수 있게 한다.
- 테러조직 내의 위험한 군사조직과의 격멸
- 주요도로, 중요시설 보호
- 러시아군의 화력운용을 위한 정찰정보수집
- 국경수호
통합군을 운용하여 이러한 내용을 수행하기 위해서 병행되야 하는 특징은
- 국가내 충성파 병력들과 친정부 민병대의 참여로 형성된 군조직의 통합적 운용.
- 적의 경제/군사적 능력 제거
- 활동적인 정보/심리적 충격으로 적군의 심리 혼란화
- 특정 지역에서의 군조직 고기동전술 운용수행
- 비례전 및 게릴라전 결합 운용.
- 지하이동시설, 지하통신, 건설장비의 효과적인 운용
- 반격, 습격, 매복시의 '타찬카'(테크니컬) 픽업트럭과 연계
또한 2015년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당시 시리아군은 완전히 돈좌된 상태였다.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장교단도 사분오열된 상태였으며, 수뇌부는 처참한 수준으로 군사력 통제에 낮은 효율을 보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측은 전투능력이 있는 친정부 민병대 조직에 집중 할수 밖에 없었다. 수헤일 장군이 이끄는 여단병력, 사막의 매, 혁병수비대 파병병력, 헤즈볼라, 파티미드(아프간 민병대), 투르키/이브라힘 민병대, 세이흐 술레이만 민병대, 자원자로 구성된 5여단 등의 전투가능 병력이 그 예이다.
이러한 비정규군 조직들은 사분오열할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러시아 연방군과 총지휘관의 통합적 지휘 하에 하나의 작전목표로 뭉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상태에 있지만, 서로 같이 하나의 통합조직으로 수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전술방식의 채택은 라타키아의 산악지형에서의 첫 성공을 달성할수 있었다. 이때 러시아 공군과 해군, 그리고 특작군은 적의 중요표적, 적집중지역, 인프라,시설들을 제거함으로써, 지상군 작전의 성공을 보장할수 있었다. 이러한 작전의 성공은 정규군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비정규전 병력이였다. 또한 이들은 라타키아, 팔미라, 크바이리스(알레포 서쪽 수년동안 IS에게 포위되었던 공군기지), 알레포, 아케바르트의 해방, 하마와 데이르 에 조르에서도 활약했다.
산악지형에서 작전은 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우회 부대을 운용함으로 고지, 전술로, 산악로등을 확보하면서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었고, 사막에서는 적 방어진지의 종심 전부에 공군, 포병을 집중운용하고, 활발하게 야습을 실시하였다. 또한 보급선 요새화와 진지를 위해 불도저등을 운용하였다.
전차들은 돌격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통제하, 효과적으로 운용되었다.
수헤일 여단과 5 자원자 여단의 두번의 돌파시도로, 데이르 엘 조르는 2017년 10월 말 포위에서 벗어났다, 호위함 '에드머럴 에센'에서 발사된 순항미사일 칼리브르를 포함한 집중젹 화력지원 이후 유프라테스 좌안지구의 교두보를 확보, 확대하였고, 시리아군은 3년이상 포위가 지속되었던 도시에 진입하였다. 테러리스트들은 역으로 포위당하고, 각개격파당했다.
가장 효과적인 자원
또 다른 특징은 - 땅굴과, 대땅굴작전이다. 적들은 통로를 만들어 자신들의 진지와 도시내를 이동할수 있었고, 자신들의 적 근처에 몰래 접근할수 있었다. 특히 다마스쿠스나 홈스, 알레포에서 이런 류의 작전을 실시하는데, 적들은 터널에 폭탄을 장착해, 지하에서 폭발시켜 정부시설을 파괴하기도 했다.
시리아 전쟁에서의 가장 큰 사건중 하나는 알레포 해방이다. 방어-공격작전 모든것이 포함된 이곳은 적의 계속된 화력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3면으로 공격해 들어왔으며, 밤낮으로 쉴새없이 전투가 벌어졌다. 방어군은 바깥고리에 형성되어, 내부고리에 공군의 적시설에 대한 폭격이 계속해서 이뤄졌고, 정찰-타격시스템 하의 포병,미사일들은 3-4개의 정보의 조합으로 중요표적을 지정해, 표적을 타격하였다.
또한, 특수작전병력은 적의 주요표적을 사보타주하는데 운용되었다.
인도적 지원작전은 타격임무와 평행하게 수행되었으며, 이러한 작전수행은 시리아의 해방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또한 수헤일 장군에 대해서는 따로 말해야 할 것이다. 그는 시리아 내의 가장 뛰어난 지휘관으로, 그는 비정규조직을 운용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많은 작전을 성공시켰으며, 틀에 박힌 생각을 피하고, 언제나 다양한 특수전 전술을 효과적으로 운용하였다.
수헤일 장군이 운용한 새로운 공격 전술들은, 이하 '시리안 샤프트'의 구축이다. 병력과 장비 피해를 막기 위해 세우는 이 진지는 장갑을 덧댄 도로건설장비등으로 세운다. 이러한 급조전술장비는 전투에서도 사용된다.
시리아 작전 당시, 우리는, 처음으로 정보간 대립(이하 정보전)의 중요성을 직감하였다. 정보자원은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무기가 사용되면 며칠뒤 엄청난 전장 변동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알레포 전투시 민간에 대한 정보공작은 한 지구를 전투 없이 해방하는데 공헌했으며, 13만명의 주민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형태의 효과는 양측의 대규모 작전간에서 발생하는 것과 동일하다. 또한 양측간의 정보전은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여론 형성에 반영되기도 한다. 나는 감히 말하건데, 이러한 정보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곳에서도 성공을 이룩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군사과학의 정수는 '유연함'에 달렸다. 특정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 나가느냐. 또한 지정학적,전략적 목표를 대규모 병력을 제외한 - 비전투적 요소와, 통합군을 어떻게 운용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 이 외에도 더 있긴 한데, 그건 특수전.. 이라긴 보단 통합군 통제 및 운용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역통합군이라는 개념이라.. 미군의 JF와 비슷하다고 해야하남 -ㅂ-?
덧글
소련 아프간 전쟁의 전훈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군요.
지금으로 치면 아사드를 무너트리고 다른 정부를 세워서 싸우는 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