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ычислительный центр №1 (ВЦ-1 МО СССР)라고 불렸던 우리로 치면, 소련의 슈퍼컴퓨터 허브가 있었습니다.
소련국방부 소속 제1 컴퓨터 센터라는 명칭이였죠. 1954년에 세워진 이 시설은, 소련의 과학과 국방력 발전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스트렐라' 중추 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이 시설은, 각 군에 배치되던 컴퓨터 M-100도 조립해서 내놓던 중요시설이였습니다.
극비사항인 국방사항도 계산해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위성인 스푸트니크부터 보스토크등까지, 모든 개발 연구에 필요한 값을 계산하고, 내놓은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중요연구시설이기도 했죠.
소련이 이 곳을 생성하게 된 이유는 한 대령과 다양한 업계(...) 동조자들이 50년대에 제시된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열정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대령이라는 사람은, 바로 아나톨리 키토프 포병 대령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괄목한 성과를 내놓았음에도, 키토프는 만족하지 않고 더욱 높은 수준의 자동화를 꿈꿨으며, 1959년, 아예 국방부 소속으로 경제권, 국방권에 컴퓨터 센터들을 세운다음 '전국 그리드화'(...)하고, 민간에도 쓸수 있는 '컴퓨터의 집단화'를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전에 언급했던 ЕГСВЦ - 국가(계획)경제 네트워크중심적 통제체계였습니다. 이러한 거대 계획을 통해, 컴퓨터의 생산력을 늘려, 미국을 뛰어넘자는 원대한 제안을 '붉은 서'에 제시하여, 흐루쇼프나 다양한 국방부 요직들에게 보여주었으나. 찬성파가 있었음에도 대부분에게 거절당했고, 이러한 '생각'을 제시함에 의해 제 1 컴퓨터 센터장에서도 좌천되었습니다.
흐루쇼프는 자세한 안목이 없었나 봅니다 ~_~. 뭐 리센코같은 놈에 헬렐레 하는 대머리였기에, 뭐.. 진정한 과학자는 제한적으로 밖에 볼수 없었겠죠. 다행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길로 갈수 있었던 걸 자기네들이 터트려버려서 멍청하다! 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5060년대의 소련은 충분히 이러한 도전을 수행할수 있었던 수행력이 있었는데 말이죠.
물론 키토프 대령은 좌천 된 이후 학자로써 커리어를 이어가는데, 이때 만난 과학자인 글루쉬코프와 의기투합해 계획한 것이 바로 오가스 시스템입니다. -ㅂ-. 안타깝게도 그것도 무관심 속에서 처절하게 노력했지만. 글루쉬코프가 요절한 까닭에 날아가버렸죠.
저주받았나(...)라는 탄식을 낼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덧글
을 받아들일 성격이 되지 않았던 건지도요.
어, 그러니까, 저기 첸쉐썬이라던가, 리셴코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