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러시아의 '군사반란'의 주동자 레프 로흘린에 대한 짧은 글 그외 잡설



레프 로흘린이라고, 아프간부터 카라바흐 내전, 체첸전까지 뛰었던 양반이 있었습니다. 육군 중장이였지만. 로흘린의 포부는 원대했습니다.


그로즈니 돌파때도 전공을 올려 '가장 적은 피해로 그로즈니 점령을 치하함' 이라는 항목으로 러시아 연방영웅 훈장 수훈자가 되었지만, 그는 이 전쟁을 '이건 러시아의 영광이 아니라, 러시아의 재앙이다.' 라는 이유등을 대며 거절했습니다.


로흘린은 이후 95년에 군출신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면서 압도적인 위험인물로 성장해버렸습니다. 로흘린은 소장으로써 현 러시아를 구원해야 한다 믿었고, 당시 개판이던 러시아군을 위한 정치단체(Движение в поддержку армии, оборон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и военной науки - 군사방산연구지원운동당 이하 DPA라고 부름.)를 세우면서 군 내의 인지도를 높혔습니다. 왜냐면 이 단체를 세우면서 들어간 양반들중에 로디오노프 전국방장관, VDV 전사령관, KGB 전국장 (공통점이 있다면 옐친 치하에서 밉보여 퇴진한 사람들) 등, 현 정권에 매우 부정적인 군 인사들이 대거 들어가게 되었고. 이 단체의 창시자인 로흘린의 정치적,군사적 입지는 커졌죠


거기다가 당시 상황은 옐친에게 최악이였습니다. 체첸에서의 졸전과 망해가는(아, 이미 망했구나) 경제와 사회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분노에 휩싸이게 했고, 이미 민심은 떠난지 오래고, 부정한 권력과 범죄조직만이 옐친을 불안하게 보호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에 로흘린은, 자신이 이 상황을 타개할 구원자가 되길 원했고, 군사 '혁명'을 일으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현 두마에 있는 전 정당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한번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득찼기에, (그는 공산당은 물론 자민당도 증오했습니다. 자민당 마저도 그를 무서워 한 수준이였으니까요.. -ㄷ-;) 정말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전 러시아 지역에 출장을 나가면서 사실상 시체상태(...)에 빠진 국방업체, 무시나 당하는 군부대, 산업체들을 돌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습니다.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 것이라고 말이죠 -ㅅ-.






체첸전 부상자를 위로하는 로흘린


그러한 활동때문에, 더욱히 로흘린을 따르는 자들이 많아졌고, 증언에 따르면 - '크렘린 호위연대의 반은 로흘린 통제에 있다' 라는 수준으로 영향력을 높혀갔습니다. 이렇게 되던 이유가 90년대의 군 개혁이라고 한 것들이 사실상 개떡같은 수준이였기에, 93년에 옐친 명령 따랐던 군이 이제는 명령도 거부할 수준으로 적대적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사실상 수도방위사령부의 주력이던 타만스카야와 칸테미롭스카야도 로흘린과 사단 사령부가 동의하에 놓여있었습니다. 적어도 거사가 이뤄졌을때, '협력, 최소한 방해하지 않겠다' 라는 수준이였죠.


또한, 로흘린의 동조자들은 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혁명을 보완할 민간 작전의 수행자들도 모집하고,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혁명이 일어날 시, 마치 적백내전 당시의 적군처럼, 물류 교통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대규모 파업과 봉쇄를 실시하여, 반대하는 올리가르히들을 마비시키고, 사회분위기를 조정한다는 것이였죠. 방산기업과 과학 아카데미들도 이러한 계획에 동참하려고 했습니다. 이유야 당연하듯, 예산이 그야말로 똥이 된 상황에, 연구지원비도 안나오고, 국방장비 팔아먹는 방산기업은 줄도산하는 가운데,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로흘린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러한 계획은 당시 벨라루스의 대통령인 루카셴코 귀에도 들어왔고, 옐친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그도 비밀리에 그와 접촉하는 수준까지 갔습니다. 이렇게 해외의 동조자도 얻고 있었던, 그는 1차 시도를 시도하지만, 불협화음으로 인해, 미수로 그치고, 1998년 7월 20일로 거사일을 바꾸지만. 쿠데타 반대파는 때를 놓치지 않고 7월 3일에 겨우 아내를 빌려(?) 암살에 성공하게 됩니다.


2주 뒤 암살 현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불에 탄' 시신 3구가 발견되었고, 신원이 미확인 된채 유야무야 끝나버렸습니다. 쿠데타 시도도 미연에 그치고 말았죠 -ㅂ-.


아내는 수년동안 누명(...)에 시달리다, 겨우시 풀려나게 되었고, 로흘린의 딸은 이 사건 이후로 현재 그루지닌이 참여하고 있는 극좌극우연합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만약에 쿠데타에 성공했다면 어떤 형태로 정부를 구성했나?


로흘린의 세력은 쿠데타가 성공할 시, 군사과도정부의 형태를 띄고 있었습니다. '러시아구국위원회'라고 불려지는 5인 지도체제의 과도정부를 구성하여 상황을 수습하고, 제헌의회를 구성, 총선과 대선을 실시한 후 정권 이양으로 계획을 짜놓았습니다. 로흘린은 이 구국위원회의 기한을 늘리거나, 자신이 그 5인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에는 원치 않았다고 동조자들은 언급했습니다.


왠지 우리 나라의 거시기가 생각난다면 예. 저도 그생각 했습니다 -ㅂ-.


구국위원회는 이후의 혁명 여파로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을 제 1 기치로 삼았습니다.



- 이 여파는 어떠했는가?


옐친은 이 위기를 암살로써 넘기긴 했지만, 이러한 압박계획은 실행되었고 군사 쿠데타만 아니였지, 사실상 퇴진 확정판단을 받은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은 로흘린 사후로도 태클을 거는데, 이에 군부에 대항/회유 할수 있는 군부/경찰기관 출신 자기 딸랑이중 하나를 자신의 비장의 카드로 준비하고, 은퇴를 준비하는데. 그 카드가 바로 푸틴입니다.


자신의 후계자를 푸틴으로 천명하면서, 군부의 반감도 누그러 뜨리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푸틴은 올리가르히 세력에게 지원받기에, 미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세력을 부숴버릴 염려도 없는 이상적인 선택이였지요. 푸틴이 아예 무명인이였기에, 갑작스럽게 총리를 시키는 등 위험한 도박을 해야하는 수는 있었지만, 옐친 세력에게는 결과적으로 해피엔딩(러시아로써는 뭐..) 인 것이지요.


참고 자료


- http://www.rospisatel.ru/rohlin.htm

덧글

  • 빵구똥꾸 2018/10/21 11:38 # 삭제 답글

    93년 정치위기 이후에도 또다른 쿠데타위기가 있었다니. 잘만 했으면 다시 국회의사당에 고폭탄 날리는 땡팔공을 볼수 있었을지도 모를일이군요
  • GRU 2018/10/25 03:15 #

    크렘린에도 날려먹을수 있었는데. 아쉽다!
  • 무지개빛 미카 2018/10/21 15:26 # 답글

    그리고 등장한 것이 푸짜르... 라스 "푸틴"이 부활하는 것이군요
  • GRU 2018/10/25 03:15 #

    곡틴의 등장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 소브착까지 가야되지만, 거기까찌 가면 너무 복잡해지니..
  • 자유로운 2018/10/21 15:54 # 답글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저리 되었으면 어찌되었을지 또 모르는 일이군요.
  • GRU 2018/10/25 03:15 #

    그렇죠 ㅋㅋ
  • 거북이 2018/10/21 20:25 # 삭제 답글

    군부정권이 들어선 다음 벨라루스랑 신연방을 결성하든가 아니면 내전이 일어나서 있던 연방도 해체되든가....
    제 생각에는 그냥 소련이 안 망하거나(물론 90년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개혁 소련 만세) 아님 최소한 93년 루츠코이가 옐친을 탄핵시키는 데 성공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 GRU 2018/10/25 03:14 #

    뭐, 21세기도 늦진 않았을 겁니다.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것도 아닌데, 속으로는 레알 막장이니 한번 뒤집어져도 이해는 못할게 아닐겁니다.

    소련이 안망할거라면, 브레즈네프 아재가 조금이라도 코시긴 개혁을 조오오오금이라도 계속했었다면 모를까 싶은데 -ㅂ-ㅋ
  • 거북이 2018/10/21 20:34 # 삭제 답글

    칸테미롭스카야랑 타만스카야는 90년 쿠데타에는 쿠데타군 하고 헌정위기 당시에도 벨릐 돔에 포도 쏘더니 근위사단 주제에 역적사단인가
  • GRU 2018/10/25 03:13 #

    원래 수도주변에 주둔하는 병력은 다 그런겁니다 허허
  • CIWS 2018/10/22 14:49 # 삭제 답글

    진짜 저긴 볼때마다 왕좌의게임을 보는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GRU 2018/10/25 03:12 #

    파워꼐임

    지면 주금;
  • 스카라드 2018/10/22 19:59 # 답글

    그냥 옐친이 80년대에 죽고 고르바초프가 블라디미르에게 계속 바톤을 넘겨주는 날까지 통치하는 편이 백번 나을 뻔 했어요. 그런데 그가 옐친보다는 제정신이 멀쩡하겠지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르비와옐친. 둘다 90년대초에 죽는 것이 더 나았을까요?


    공산 소련이 좋다고 이러는 거 절대로 아닙니다!
  • GRU 2018/10/25 03:12 #

    아마 옐칭칭이 순국선열(?) 되고, 고르비가 갈팡질팡 안하면 곡틴은 그저 KGB 연락장교밖에 못했을 겁니다 ;ㅅ;
  • Kamchatka 2018/10/24 19:28 # 삭제 답글

    ...剪痘患?
  • GRU 2018/10/25 03:21 #

    ㄱ..공익이 공익이 버스를 20번이나-- 혼자타아네
  • Kamchatka 2018/10/25 16:18 # 삭제

    전! 땡!

    (화염방사기로 태워 죽여도 모자랄 색히...)
  • 2018/10/26 18: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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