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사이버-네트워크 체계 구현과 실패 그외 잡설




Ⅰ. 서 론


21세기는 이른바 정보화 시대라고도 불리는 시대이다. 주위에 컴퓨터가 들어가지 않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8년에 다다른 지금 사회망과 정보망이 융합되는 시대, 다시 말해 우리는 복잡한 민원 과정을 몆십 분 만에 처리할수 있는 정도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연계가 강화되고, 빠른 행정 처리와 더붙어서 전국의 사회적 정보망이 구성이 되어가고 있다. 즉, 대용량의 데이터를 수집해 해당 지역에 필요한 기간사업이나 주민들의 요구를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지 않았던, 20세기로 돌아가 사회주의의 맹주라고 볼 수 있는 ‘소련’의 이미지는 비대한 관료제와 공산독재의 인식 때문에 ‘전산화’와는 매우 거리가 먼 국가로 인식된다. 하지만, 소련의 일부 학자들은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계획경제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정보화로 보았고, 그들은 이를 위한 ‘사회주의적 정보사회’을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이 논문은 연구자가 두 개의 제안된 시스템을 중점으로 그들의 정보화 시스템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왜 좌절되었는지 연구하였다.



Ⅱ. 본 론



1. 기존계획경제의 한계와 사이버네틱스


소련은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로, 볼셰비키 혁명(10월 혁명)을 통해 구성되었다. 이후 적백내전 시기의 전시공산주의의 도입으로 파괴된 경제 상황을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한 NEP 정책을 실시하기도 하나, 1928년 스탈린의 주도로 고스플란의 산업화 계획, 즉 5개년 계획을 통해 본격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이는 기존의 시장경제와는 다르게,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이 중심이 아닌, 중앙에서 목표생산량을 계산하고 계획을 발표 후 생산자는 계획을 수행하고 목표를 달성하여 사회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형태의 경제체제로써. 당시에 소련의 급격한 산업화의 성공을 보여줌에 있어, 다양한 국가들이 이러한 성공을 참고하게 된다. 하지만 고스플란의 계획 구성에 있어서, 자세히 분석하다 보면, 당시의 중앙 지도층의 ‘낙관적’ 구상으로 인한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인 목표, 넓은 영토에 대한 행정적 부담, 목표달성 실패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 집행하는 행정/산업 계획 집행시 생산 통계 조작, 그리고 아무런 근본 없이 밀어붙인 계획 때문에 미숙한 노숙자들이 대량생산하는 도중 들어나는 생산품의 낮은 품질로 경쟁력은 낮았고, 강압적인 집단화와 국가의 폭력적인 대응에 농민과 노동자들은 고통 받았으며, 당내 공포정치로 주요 전문가들의 건전한 비판마저도 마비 된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여기서, 계획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 통계의 정확도와 그 통계를 기반으로 한 계획의 효율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개년 계획에서도 언급되듯, 아무리 5개년 계획이 소련의 산업화를 구현한 성공적인 결과였다 하더라도 중요한 부분에서 위 같은 결함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나 브레즈네프시기에 있었던 일련의 개혁들은 이런 결함을 개선해 계획경제를 보다 더 좋은 효율을 낼 수 있게 하는 성과를 기대했지만.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실패한 개혁들, 대표적으로 흐루쇼프의 효율적인 행정을 위한 조직 재구성을 수행하려 하였으나 행정간 혼란만 가중시켰고, 이후 브레즈네프 당시 코시긴 개혁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표류를 통해서 5개년 계획이후 소련 계획경제 비효율성의 그 자체인 비대한 관료주의의 문제점은 더 심화되었으며, 이렇게 결함은 계속해서 악화만 되어갔다. (알렉 노브, 『소련경제사』. (창작과비평사, 김남섭 옮김, 1998), pp362-427)


이러한 계획경제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행정개선안(대부분 실패했다고 언급하였지만)들 외에도, ‘기술적’ 개선안이 195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컴퓨터 과학, 즉 사이버네틱스(러시아어로 키베르네틱스)은 소련에도 유입되었으며, 사이버네틱스를 위에 언급되었던 중앙통제로 인한 계획경제의 효율성 문제해결은 자동화된 정보네트워크 망 구성에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구상은 일련의 경제학자들이 찬동하였고, 당시 흐루쇼프의 개혁기조에 따라 소련 사이버네틱스 학술원들은 지역에 ‘수학적 경제’ 연구를 위한 컴퓨터 센터들을 설립하는 등 기초적 성과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믿음은 소련 국방부에서 주관하는 군사목적 컴퓨터 센터의 성공적인 임무수행으로 뒷받침 되었다.

소련의 사이버네틱스의 기초적 성과는 대부분 군사적 임무에서 시작되었다. 50년대, 당시 미국의 군사목적 통제 컴퓨터 시스템(SAGE)에 자극받은 소련 측은 미국의 SAGE와 유사한 대공통제시스템, 우주감시시스템에 사용될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Slava, Gerovitch. 『InterNyet: why the Soviet Union did not build a nationwide computer network,』, (History and Technology 24:4, 2008) pp335-350)

또한 국방부 제1 컴퓨터센터(ВЦ-1 МО СССР)가 건설되어 연구에 필요한 계산과 소련 우주계획에 필요한 계산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Первый ВЦ и его основатель. https://www.osp.ru/os/2008/05/5205980/.)

이러한 기술발전에 필요성을 역설하던 인물은 소련군 대령이자 소련 내 사이버네틱스 도입에 대하여 대표적인 찬성자였던 아나톨리 키토프(Анатолий Иванович Китов) 대령이었다. 키토프는 1950년대 소련 내 주요 사이버네틱스 논문의 공동 집필자이자, 자신의 강력한 주장으로 도입한 국방부 제1 컴퓨터센터의 성공적인 임무수행으로 영향력이 높아져 있었다, 그는 자신과 동일한 찬성자들을 규합해 정치적인 요구를 하였고, 키토프의 가장 큰 지원자였던 악셀 베르크(Аксель Иванович Берг) 제독과 같은 다양한 지지자들의 등장에 힘입어, 1959년 흐루쇼프에게 소련의 중앙국가통제망에 대한 계획서를 제안했다. 이 편지에서 이러한 계획을 수행하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낙관적이고, 야망에 찬 발언도 섞여 있을 정도로, 키토프는 사이버네틱스에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러한 요구에 공산당은 부분적으로 그의 의견을 – 컴퓨터 생산량 증대와 같은 제안은 -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키토프의 주요 급진적 제안인 ‘중앙국가통제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중앙국가통제망에 대한 제안을 중앙 당 회의에서 주장했고, 이후 주요 지지자였던 베르크 제독이 일선에서 퇴임하자마자, 일방적인 주장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군부와 반대파에 의해 당에서 쫓겨나게 된다. 키토프는 또한 국방부 소속 컴퓨터 센터장 자리에서도 쫓겨났고, 모든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지만, 네트워크 연구는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숙청’은 흐루쇼프 시대의 특징이기도 했다.

사이버네틱스 지지자들은 타격을 입었음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1962년 지지자 중 하나이자 선도적 엔지니어인 알렉산드르 하르케비치(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Харкевич)의 ‘국가적 정보교환시스템’을 개설하는 것을 제안하였고, 텔레비전, 전화, 전보와 같은 모든 통신신호를 디지털화 하여, 하나의 국가규모 컴퓨터 네트워크에 들어가 ‘정보수송’을 가능케 하도록 하여, 네트워크에 연결된 부서들 마다 필요한 정보제공에 대해 자동으로 즉각 수행이 가능케 하는 시스템 이였다. (Kharkevich, Aleksandr. 『Informatsiia i tekhnika』, (Kommunist, 1962), pp93-102. Slava, Gerovitch. 『InterNyet: why the Soviet Union did not build a nationwide computer network,』, (History and Technology 24:4, 2008) pp335-350 에서 재인용.)


이러한 시스템은 지역 행정과 중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행정수행에 대해 개선이 가능하게 되는 시스템 이였다. 이러한 제안과 요구에 힘입어 결국 소련 지도층은 사이버네틱스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대규모 전산화계획경제 구현에 대해 고려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이버네틱스 지지자들이 제안한 주요 ‘정보화 계획경제시스템’은 대표적으로 2개가 존재한다. 가장 첫 번째로 제안된 키토프의 ‘중앙국가통제망’(ЕГСВЦ)과 중앙국가통제망 계획을 조금 더 구체화 하고 수정한 글루쉬코프의 ‘전연방자동정보처리시스템’(ОГАС)가 존재한다. 이 두 체계에 대한 설명은 다음 장에서 언급한다.



2. 소련 네트워크의 개념과 도입 시도



출처 - https://alexeybright.livejournal.com/6703.html (권력의 기계, 3부)

(1) 중앙국가통제망(ЕГСВЦ)


1959년, 소련군 포병 대령이자 컴퓨터 과학자였던 아나톨리 키토프가 흐루쇼프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시한 다목적자동운영시스템(Multi-Automatic Control System) 계획으로, 소련 내에 있는 경제, 행정, 학술, 군사시설에는 말단 컴퓨터망(низовые центры), 이러한 컴퓨터 시설을 관리하는 중간허브(вычислительные центры обслуживания), 최종적으로, 시설망에서 수집한 경제/행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계획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중앙허브들이 연결된 중앙국가통제망(ЕГСВЦ)으로 구성된다.

50개의 고성능 컴퓨터 센터들로 구성된 중앙통제허브를 필두로,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300-400개의 중간허브와 전 국토에 연결된 약 7000개 시설망으로 전 소련을 망라하는 자동계획경제운영망을 구성할 계획이었다.  또한 중간허브는 이후 집단이용 컴퓨터센터(вычислительных центров коллективного пользования)으로써, 시설망의 연결뿐 만이 아니라, 시설망을 구성 못하거나, 부족한 컴퓨터 장비를 보충해주는 지원시설의 역할과, 중앙허브의 용량이 초과하는 복합/대형계획안의 정보처리보조도 맡을 수 있었다. (Kathryn M. Bartol. 『Soviet Computer Centres: Network or tangle?』, (Soviet Studies. Vol. 23. № 4., 1972), pp608-618 Slava, Gerovitch. 『InterNyet: why the Soviet Union did not build a nationwide computer network,』, (History and Technology 24:4, 2008)pp335-350 에서 재인용.)


통제시스템은, 두 가지 모드로 형성되며, 평화 상태와 전시상태의 자동운영시스템으로 나뉜다. 평화 상태는 모든 자동운영을 경제와 행정, 연구계획에 치중하는 구조이지만, 전시상태로 돌입하면, 군사작전으로 전환된다.
키토프는 중앙국가통제시스템의 도입으로 소련 계획경제를 ‘자동화’로 재구축하려고 한 것이며, 이러한 전산계획경제를 책임질 자동운영시스템의 개발, 조율, 운용을 위한 전 소련 정치적 협의체 –고스코무프르(Госкомупр)를 제안했다. 또한 키토프는 소련 전국에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하여 컴퓨터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흐루쇼프에게 호소하였다,


흐루쇼프는 컴퓨터 생산량에 대한 제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급진적인 체제변경이 필요한 자동운영시스템의 도입에는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소수의 지지자들이 있었지만, ‘경제와 군사의 통합시 보안문제’를 이유로 거부했으며, 또한 키토프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되고 대령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다만, 중앙국가통제망의 기초 시설망은 1964년, 리베르만, 벨킨과 같은 경제학자들의 효율대비 비용에서 비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상인 코시긴의 지지를 얻어 우크라이나 리보프 지역 TV공장에 시범적으로 개설되었고. 1967~9년 컴퓨터를 통한 생산 관리, 생산품 조달, 금융 및 회계의 자동화라는 기초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리보프에 실험적 통제망을 구성한 과학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이버네틱스를 연구하던 글루쉬코프였고, 그는 키토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실현안인 오가스를 구상해내었다.  (『АСУ «Львов» и «Кунцево»: роль и значение』. http://www.computer-museum.ru/articles/sorucom_2011/81/.)



연방망, 공화국망, 지역망의 모습.


(2) 전연방자동정보처리시스템(ОГАС)




우크라이나 키예프 사이버네틱스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빅토르 글루쉬코프(Виктор Михайлович Глушков)는 같은 사이버네틱스의 동조자인 키토프의 통제망 제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통제망을 제어할 보완적 시스템을 제안하였으나 동일하게 거절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소련은 미국이 유사한 통제망인 ‘아파넷’(ARPANet)을 1966년 계획하고 69년에 운용할 계획임을 파악하였고, 소련은 글루쉬코프가 제안한, 전연방자동정보처리시스템, 이하 오가스 구현에 대한 계획 가능성을 논의하였고, 1971년 공식적으로 계획이 공산당 내에서 고려되었다. 하지만 소련은 제안된 오가스의 기능을 줄이고, 극소수의 개념만을 채택한 이하 ‘축소’형을 개발하길 원했고, 1980년 공식적으로 개발 초안이 나왔을 시에도, 글루쉬코프는 자신의 의견이 대부분 묵살됨에 분노하여,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Спільне, 2016)

글루쉬코프는 소련 전국에 컴퓨터 통제망을 형성하고 운영체제인 오가스를 개발하여, 전 소련의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문서관료제와 계획경제에서 빠른 통신과 효율적인 컴퓨터-자동운영시스템으로 하여금 전자계획경제와 행정으로 이어가고자 하였다.
오가스는 소련 행정조직 내(행정부, 고스플란, 과학기술위원회(ГКНТ), 물류조직(МТС)) 보유하고 있는 모든 정보망을 하나의 자동운영체제에 통합한 것이며, 오가스를 통해 소련 전국의 모든 공장들과 농장들, 그리고 연구시설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말단 컴퓨터망, 수집된 정보를 전달하는 데이터전송센터와 이를 처리하는 컴퓨터 센터들이 구축되어 신속하고 정확한 5개년 계획안을 수립하여, 이를 수행하도록 자동으로 말단 컴퓨터 망으로 계획을 보내 경제/연구주체들이 정확한 계획을 수령 받아 하는 것이다. (『Pioneers of Soviet Computing』. . https://www.sigcis.org/files/SIGCISMC2010_001.pdf.)

복잡한 행정절차와 문서들, 그리고 복잡한 처리과정에서 일어나는 혼선과 궁극적으로 과장되거나 달성되지 못하게 되는 기존의 계획경제보다 더욱 효율적일 것이라고 글루쉬코프와 개발진은 평가했다.

1980년, 글루쉬코프는 오가스의 기본적인 통제망 구성(ГСВЦ - 국가컴퓨터센터망)에 긍정적 결과가 나오자, 오가스를 계획경제의 부분에서만이 아닌, 일반사회복지와 같은 분야에도 통합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소련 내 인구의 자동인구건강정보처리(медицинского учета населения), 주거정보자동처리(коммунальных платежей), 고용정보자동처리(трудовых отношений), 그리고 모든 서비스와 재화에 대한 ‘무현금지불’(безналичную форму расчета гражданами за приобретение товаров и услуг)등을 구현하려고 했다. 즉 1990년에 기초적으로 구성될 오가스 체제는 진보한 계획경제를 넘어선 ‘정보화 사회주의’의 구성을 목표로 한 것이다.


(1990년에 구성될 기본적인 통제망의 모습.)

구현될 통제망은 크게 3개의 중추로 이뤄지며, 모스크바에 구축된 연방단계의 모든 계획/복지를 처리하는 ‘연방’ 망, 각 연방 공화국의 수도에 위치한, 공화국 내 경제계획, 사회복지의 정보를 처리하는 ‘공화국’ 망, 그리고 공화국 내 기본적인 지역경제와 복지를 처리하는 ‘지역’ 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구성이 완료되었을 1990년에는 기본적인 지역망과, 공화국망, 그리고 연방망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글루쉬코프는 1990년에 구현된 오가스의 구현에 대한 기대효과는 750~1050억 루블이며, 통제망 구성으로 시설 자동화에 대한 효율은 1150~1250억 루블, 국정운영 효율에 최소 0.87%의 향상을 기대하였다. (『ОГАС В. М. Глушкова: История проекта построения информационного общества』. https://commons.com.ua/uk/ogas-v-m-glushkova-istoriya-proekta-postroeniya-informatsionnogo-obshhestva/.)





3. 네트워크 구성 실패와 요인


중앙국가통제망을 제안한 소련 정보화의 첫 기수였던 아나톨리 키토프의 제안은 당시에 당원들의 지지를 충분히 받을 수가 없었다. 베르크와 같은 중앙당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지자가 정계에서 은퇴한 점과, 흐루쇼프의 혁신적 경제개선안을 편승하려고 하였지만, 흐루쇼프는 전산화에 대한 견해가 당의 통제력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당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에는 흐루쇼프와 그의 주요 당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키토프는 주장했다.

또한 제안 당시 소련에서 끌어올 수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는 군용이였으며, 이마저도 사용하고 있는 대다수의 컴퓨터들은 좁은 전문분야에 특화되어 있었고, 이러한 컴퓨터는 키토프가 생각하는 민간 정보를 처리하는 용도로는 한계가 있었다. (Slava, Gerovitch. 『InterNyet: why the Soviet Union did not build a nationwide computer network,』, (History and Technology 24:4, 2008) pp335-350)

아나톨리 키토프의 제안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1965년 리보프 운영시스템을 통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으나, 조금 더 복잡한 계획경제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쿤체보’ 운영시스템을 개발 도중 기존의 소련이 보유한 컴퓨터로는 원활한 계획능력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고. 성능개선엔 더욱 높은 비용을 요구했고, 공산당은 계획에 투자하기에 부담감을 느꼈다.(『АСУ «Львов» и «Кунцево»: роль и значение』. (2018년 12월 18일). http://www.computer-museum.ru/articles/sorucom_2011/81/.)

글루쉬코프의 오가스 시스템은. 군부의 반감을 사고 있었던 기존의 ‘전시-평시 시스템’과 같은 군사-민간 통합 전산망에 대한 구상이 없어졌으며, 초기 브레즈네프 시기, 계획경제의 혁신을 원했던 코시긴 수상의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1년도부터 개념구성단계에 있던 오가스는 이전의 체계와 동일하게 경제학자들의 비용과 효율면에서 격렬한 반대에 봉착했고,(Кузнецова, 2005) 통제망과 시스템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행정부들은 독점 가능한 정보를 통합한다는 것에 대해 각 행정부의 독립된 권한과 통제력이 낮아진다고 판단하여,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행정 부처들은 또한, 부서별 정보처리에 필요한 정보망 구축에 대해서는 협력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글루쉬코프는 부서별 독립적인 정보화를 꿈꾸는 것이 아닌 부처 간 통합 정보화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앞에 설명한 소련 관료와 과학자는 상호간에 입장이 엇갈려 있기 때문에, 답보에 빠졌고 중앙당의 강력한 영향력 외에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 차원에서도 1980년에 제안한 통제망/시스템의 구현비용이 750억 루블, 당시 1980년의 국가지출의 5.8%(당시 국방비와 동일)로, 비용 적으로 매우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중앙당은 제안에 대해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을 내놓았을 뿐이며 1982년, 개발중책인 글루쉬코프의 요절로 인한 계획의 구심점이 사라짐에 따라 표류하였다.

또한, 당시의 컴퓨터는 전국의 행정과 경제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처리할만한 성능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었다. 당시 글루쉬코프와 연구소 직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개선수단을 고려하였으나, 그 기술적 문제 개선안들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가스는 기초 토대는 구성되었지만, 악재와 공산당의 소극적 태도에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고, 1985년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기존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변혁을 의미하는 페레스트로이카 – 사실상의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하게 되면서, 오가스는 더 이상의 계획경제보조에도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1986년 제27차 공산당 대회 당시에 열린 기술대회에서도 오가스 중앙통제식 정보망은 관심을 잃었다. 전산화에 대한 기본적인 안건에 대한 토론이 오갔지만, ‘계획경제와 국가운영의 현대화로써’의 시스템 언급은 사라졌다. 결론적으로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 오가스 계획을 구현하는데 실패했다.


Ⅲ. 결 론

당시 소련이 사이버네틱스, 정보화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는 소식은 소련 자체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적 오류가 많은 계획경제의 떨어지는 능률을 ‘컴퓨터’의 도움으로 막을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를 속칭 ‘공산주의의 기계들’이라고 평가하며, 케네디 대통령의 측근은 소련의 컴퓨터와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관심과 개발을 경고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우린 끝장입니다.’(We are finished.)라고 표현하면서 소련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Slava, Gerovitch. 『InterNyet: why the Soviet Union did not build a nationwide computer network,』, (History and Technology 24:4, 2008) p.366)

하지만, 소련은 본론에서 설명하였던 대로, 사이버네틱스 기술을 통해 정보화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있었던 전국 정보화 계획을 결국 91년이 다되면서까지 시도하지 않았고, 그렇게 선전했던 공산주의의 기계가 실제로 소련의 국정운영에 나타나 미국의 두려움을 실현하려는 의지조차도 보이지 않던 이유는 이런 기계를 오히려 공산당 그 자신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기술적 진보에 대한 비용과 지역의 정보취득의 간편화으로 일어날 영향력 감소에 대한 공포, 기술에 대한 불신, 행정부내 영향력 주도에 대한 투쟁 또한 그들의 선택의 장애물이 되었다.


소련은 정체되었던 경제체제의 비효율성을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인 것을 수정하였으나 기술적인 개선안인 정보화에는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 소극적인 움직임에 의해, 1950년대 시작된 연방 정보화는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고, 공산당은 계획경제의 효율과 국가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소련과 함께 해체된 것이다.

첨언(각주 못다는게 너무 불편하네요 -_-)

- 경제학자 가브릴로 포포프의 견해에 따르면 - 오가스 체계를 기반으로 정보화가 일어날시의 국가통제능력 확대에 대해 경계하면서 ‘전산화 파시즘’이라고 칭하였고, 이전 체제보다 더욱 전체주의적 통제가 쉽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Кузнецова, 2005)

- '공산주의의 기계들'은 1961년 제 22회 소련 공산당 대회 이후, 소련에서 컴퓨터를 선전하기 위한 표현이다.

- 1965년, 중앙국가통제망 내 컴퓨터들이 감당할 정보량은 글루쉬코프의 언급에 따르면 약 5000억 비트 (현재 기준 58 기가바이트)가 망 내에서 처리되며, 2300억 비트(현재기준 26 기가바이트)가 자동생산운영(생산 관리)에 사용된다고 언급했다. 당시로써는 엄청난 양의 정보처리능력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출처 - https://alexeybright.livejournal.com/6703.html (권력의 기계, 3부) )



참고문헌



『ОГАС В. М. Глушкова: История проекта построения информационного общества』. (2018년 10월 2일). https://commons.com.ua/uk/ogas-v-m-glushkova-istoriya-proekta-postroeniya-informatsionnogo-obshhestva/.
『Pioneers of Soviet Computing』. (2018년 10월 9일). https://www.sigcis.org/files/SIGCISMC2010_001.pdf.
Slava, Gerovitch. 『InterNyet: why the Soviet Union did not build a nationwide computer network,』, (History and Technology 24:4, 2008)
『Первый ВЦ и его основатель』. (2018년 10월 2일). https://www.osp.ru/os/2008/05/5205980/.
『АСУ «Львов» и «Кунцево»: роль и значение』. (2018년 12월 18일). http://www.computer-museum.ru/articles/sorucom_2011/81/.
알렉 노브, 『소련경제사』. (창작과비평사, 김남섭 옮김, 1998)
Кузнецова, Т. 『К истории Института экономики РАН (АН СССР): домыслы и реалии』 (М.: Институт экономики РАН, 2005)



요약 - 소심한 콩산당!



이쪽 연구 계속하면서 '실제 실험망'(위에 언급된 리보프 자동운영체제)에 대한 성공 사례를 확인할수 있었던게 가장 큰 충격이였습니다. 실험대상은 전국에 비교하자면 보잘것 없지만 (공장과 일부 지역) 그래도 그 시스템이 기본적인 공정관리, 생산품 조달관리, 금융,회계의 자동화가 실제로 성공적인 결과를 보였다니. 허.. 1960년 말의 소련 기술력은 의외로 상당한 수준이였나 봅니다.


물론 공산당이 그 가치를 읽지 못한것도 있지만, 이러한 가치를 읽어 냈더라면, 소련 중앙통제의 한계를 넘어선 무서운 놈들이 되었을 것이라는 건 확신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지만, 특유의 밀어붙이기였다면 가능 했을 겁니다. -ㅂ-


시진핑보고 사이버-펑크 독재라고 하죠? 그걸 21세기 초 소련(...?)의 모습이 될수도 있었다.. 뭐 그런이야기죠 ㅋㅋㅋ 물론 공산당은 그 부분보다는 지역과 중앙의 정보습득의 평등화 때문에 생겨날 '영향력 감소'에 대해 더 신경썼다는게 문제지만 말입니다 -ㅅ-.


덧글

  • 존다리안 2018/12/21 07:46 # 답글

    소련에서는 파시즘 기계, 미국에서는 공산주의 기계....
    이렇게 경계받고도 오늘날 승자가 되어버린 정보화 혁명
  • GRU 2018/12/27 20:56 #

    핫하하! 빛이 있으라!
  • 잡지식 2018/12/21 10:13 # 삭제 답글

    사실 4차 산업 혁명은 볼셰비키들의 이상향인 것입니다!!!
  • 심영머신 2018/12/21 10:49 # 삭제

    사회주의 낙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GRU 2018/12/27 20:56 #

    ?!!?
  • 함부르거 2018/12/21 11:05 # 답글

    저도 읽으면서 요즘 중국 생각이 났는데 같은 느낌을 받으셨군요. 1984 식의 통제사회가 진짜로 실현되고 있다는 게 참...
  • GRU 2018/12/27 20:56 #

    ㅋㅋㅋ 어쩌다 보니 그걸 구현하게 되버렸네요
  • 빵구똥꾸 2018/12/21 11:07 # 삭제 답글

    소련: 인민이 뽀르노를 쉽게 다운받게 되면 콩사탕이 맛없다는걸 빨리 깨달을지도 모른다!
    미국: 소련이 시빌라시스템을 개발할지도 모른다!

    스카이넷 의문의 1패
  • GRU 2018/12/27 20:56 #

    시무룩..
  • blackace 2018/12/21 11:42 # 답글

    네이버블로그 말고 플러그인질 하지 않고도 그냥 에디터에서 각주삽입 가능한 블로그 서비스 어디 없으려나요.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8/12/21 20:52 #

    전 워드에서 작성하고 워드에서 블로그글 올리는데 한번 알아보심이....
  • GRU 2018/12/27 20:57 #

    뭐, 사실 말해 그 정도의 전문성이 있을 글을 올릴 떄는 아니긴 하져 -ㅂ-
  • 자유로운 2018/12/21 18:05 # 답글

    진짜 저거 보니 무섭군요. 안되었다는게 다행일지도요.
  • GRU 2018/12/27 20:57 #

    그래도 먹고 살기에 좋으려면 저런게 있었어야 ㅋㅋㅋ
  • 포스21 2018/12/22 09:19 # 답글

    소련의 공산당이 자신들의 권력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생기는 걸 허용할 리가 없으니... 원래부터 저건 좌절되게 되있는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저기 위에 나오는 58기가 , 26기가 바이트는 그당시에는 정말로 어마어마한 용량이었을 겁니다. 정말 밀어 부친다면 거의 미국의 아폴로 계획과 동급 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어떤식으로든 좌초될 운명이라고 보이네요.
  • GRU 2018/12/27 20:57 #

    고래도 꿈이 있었는데, 이루지 못했다는건 아쉬워 보이죠 =ㅅ=
  • 스카라드 2019/01/05 21:36 # 답글

    아름다운 소련의 여캐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아야나미 레이의 현지화 여캐인가요? (^_^)
  • GRU 2018/12/27 20:57 #

    아스구입니다 ㅋㅋ 2032라는 오디오 드라마에서 나오는 캐릭터인데, 어쩌다보니 그쪽 인기캐가 되어서..
  • 진보만세 2019/02/17 22:37 # 답글

    접하기 어려운 소련 분석 자료, 덕분에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 GRU 2019/02/18 08:34 #

    이런 자료를 관심가져주시다니, 제가더 감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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